1985년 민청련 사건으로 연행된 Y씨 앞에 수사관이 진술서 한 뭉치를 던졌다. "봐라. 너희 대장이 불었어." 민청련 리더 K씨의 글씨가 분명했다. Y씨는 뒷날 "그걸 보고 절망했다. '아무리 고문을 받았다 해도 이럴 수 있느냐'는 마음이 한 10년 동안 갔다"고 털어놓았다. 군사 정권 시절 공안 당국이 연행자들 입을 열게 하던 방법은 고문만이 아니었다. "너 혼자 안 불었다. 너만 손해다." 서로 불신토록 해 '죄수의 딜레마'에 빠지게 만드는 것은 동서고금 수사 기관의 전통적인 방식이다.

▶한국당 심재철 의원과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39년 전 1980년 '서울의 봄' 때 '누가 수사 기관에 동지를 실토했느냐'를 두고 논쟁 중이다. 심 의원은 서울대 총학생회장, 유 이사장은 총학생회 대의원회 의장이었다. 방송에 나온 유 이사장의 자기 과시가 발단이었다.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으로 끌려가 조사받을 때 맞지 않기 위해 진술서를 하루 100장 썼는데, 내가 글을 잘 쓴다는 걸 그때 알았다." 그러면서 비밀 조직 등 핵심 정보는 끝까지 감췄다고 했다.

▶심 의원이 "거짓말"이라며 유 이사장의 그때 진술서를 공개했다. 유 이사장 진술서엔 김부겸·신계륜 등 당시 학생운동가 77명의 이름과 행적이 등장한다. '김대중씨와 관계한다고 소문 돌던 이해찬'이란 표현도 있다. "전지적 관찰자 시점에서 작성된 상세한 행적이 동료들의 목을 겨누는 칼이 됐다. 수사 당국에 상세한 지도를 줬다"고 심 의원은 말했다. 자신도 이 진술서 때문에 사법 처리됐는데 유 이사장은 불기소 석방됐다고 했다.

▶유 이사장은 비밀 조직을 감추기 위해 학생회 등 공개 조직을 내세워 허위 진술한 것이라고 했다. 오히려 심 의원이 자수한 뒤 당국이 요구하는 진술을 해줬다고 했다. "나는 그의 진술서를 보고 맞춰 썼다"고 했다. 그러자 심 의원은 자기 진술서까지 공개하고 "나는 고문과 협박 속에 유시민 이름은 한 번 거명했다. 유시민은 내 이름을 78번 거론했다. 국민께서 판단하시라"고 했다. 두 사람은 한때 형제처럼 가까워 '군대 첫 휴가 나와 면회 가던 사이'였다고 한다.

▶민주화 운동 경험 있는 한 인사는 "고문에 회유가 이어지면 누구도 못 버틴다. '나는 버텼다'는 얘기는 다 거짓말"이라고 했다. "수사관이 볼펜만 던져도 알아서 진술서를 써내려간 사람도 많다"고도 했다. 그때 일을 자기 고백까지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TV 예능 프로에서 자랑할 소재도 아닌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