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1월 독일의 나치 수뇌부가 베를린 외곽의 반제(Wannsee) 호숫가 별장에 모인다. 이들은 이곳에서 20세기 가장 잔혹한 학살극을 결정한다. 유대인을 유럽에서 완전히 말살하려는 이른바 '유대인 문제에 대한 최종 해결책'에 합의한 것이다. 지난달 찾은 반제 호수는 봄볕으로 따스하게 빛났다. 부산 우리 집 옆에는 위안부역사관이 있다. 이 역사관을 보며 나는 늘 궁금했다. 독일은 왜 꾸준히 과거 반성을 선언하고 일본은 얼버무리는지. 이런 결과의 뿌리는 어디에 닿아 있는지 알고 싶은 나는 지난달 독일로 향했다.

가해자 관점 보여주는 기념관

내가 반제 회의 기념관에 도착했을 때 베를린 훔볼트대 유럽학과 학생 6명이 이곳에 왔다. 반제 별장은 1992년 '반제 회의 기념관'이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했다. 반유대주의와 인종차별에 대한 역사적 배경, 나치의 만행 등 관련 문서와 사진을 전시해놓고 연중 내내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베를린 외곽 ‘반제(Wannsee) 회의 기념관’을 찾은 훔볼트대 학생들이 1930년대 독일의 유대인 인종차별 정책과 박해 과정에 관한 설명을 듣는 모습.

이 공간은 독일 최초로 가해자의 관점을 다루는 홀로코스트 기념관이다. 이날의 교육 주제는 '유대인 박해'였다. 반제 회의 참석자들의 큼직한 사진이 걸린 방에서 강의가 시작됐다. 교육자가 한 사진을 가리켰다.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입니다. 게슈타포(독일 나치의 정치경찰) 수장이었던 이 사람이 회의를 주도했습니다." 학생들은 질문을 쏟아냈다. "회의는 얼마 동안 진행됐습니까" "가해자들은 이후 처벌받았나요?"…. "두 시간도 채 걸리지 않아 유대인 말살 계획이 확정됐다"는 답변에 몇몇은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훔볼트대 학생 루븐 스투큰버그(26)씨는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이라도 알게 됐네요.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끄러운 역사 가르치는 독일 vs 반성 안 하는 일본

일주일간 돌아본 독일은 '우리는 전범국이다. 하지만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끝없이 다짐하는 듯했다. 나치의 주요 관청이 있던 자리는 박물관·교육소·기념물이 되었다. '유럽에서 학살된 유대인을 위한 추모 재단'에 따르면 2차 대전 관련 전시관·기념물이 베를린에만 38곳에 달한다. 예컨대 베를린 도심 한복판, 국회의사당 바로 옆에는 '홀로코스트 추모관'이 있다. 축구장 3배나 되는 넓은 면적에 콘크리트 추모비 2711개가 세워진 모습에 숙연했다. 학살의 참상이 드러나는 적나라한 사진을 전시한 '테러의 토포그래피 박물관', 수용자들의 심정을 느낄 수 있게끔 빛 한 줄기만 들어오는 공간을 설계한 '유대인 박물관'…. 부끄러운 과거를 기억하겠다는 의지와 신념이 엿보였다.

가해자 처벌은커녕 '문제는 해결됐다'고 주장하는 일본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은 위안부 문제에 대해 진심 어린 사죄를 하지 않고 지난 잘못을 무작정 지우려 하고 있지 않은가. 또 2015년 하시마 탄광(일명 군함도) 등 '메이지(明治) 산업혁명 유산'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하는 과정에서 태평양 전쟁 당시 조선인 강제 노동으로 전쟁 물자를 만들던 기지였다는 어두운 기억은 감추고 산업화 기지라는 밝은 측면만 부각했다. 베를린 홀로코스트 추모관 앞에 서서 일본 도쿄 한복판에 '태평양 전쟁 희생자를 위한 추모비'가 서 있는 상상을 해봤다. 과거를 진실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미래 세대를 제대로 가르쳐야 할 책임이라는 걸 일본 정부도 깨닫는 날이 올까.

피해자 입장에서 혐오·인권 배우는 10대

독일의 역사 교육은 퀴퀴한 유물 전시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증강현실 같은 첨단 디지털 기술까지 접목해 '어제보다 나은 독일이 되어야 한다'고 각인하려 전력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프랑크푸르트 주택가의 '안네 프랑크 교육관'은 첨단 기술 전시장 같았다. 마침 독일 청소년 22명이 단체 수업을 하러 왔다. 교육 담당자 마리 몰러가 태블릿PC를 하나씩 나눠주었다. 태블릿PC의 카메라로 교육관 안에 붙은 단면도를 찍자 태블릿PC 화면에 안네가 숨어 있던 방이 360도로 고스란히 재현됐다. 스피커 모양의 아이콘을 누르니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의 나지막한 증언이 흘러나왔다.

프랑크푸르트 ‘안네 프랑크 교육관’에 단체 수업을 들으러 온 청소년들.

역사 교육의 종착점은 '내일'이었다. 아이들은 몰러씨 앞에 둘러앉아 혐오 범죄, 인종차별 등에 대해 토론하며 더 나은 내일을 위한 실천 방안을 이야기했다. 전시장 곳곳엔 '모르겐 메어(Morgen Mehr)', 즉 '내일은 더'라고 붙어 있었다. 암흑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으려던 안네 프랑크의 일기에 나오는 말이기도 하다. '내일은 더 용기 있게 증오에 맞서자' '내일은 더 정의롭게'…. 이 말에 여러 뜻을 이어 붙이며 묵상하는 독일인의 모습을 보며 진창 속에서도 미래를 향해 앞으로 나아가려는 인류의 의지를 생각했다.

[미탐100 다녀왔습니다]

북적이는 추모관들… 과거사 잊지 않으려는 독일인들 의지에 감탄

베를린 ‘안네 프랑크 센터’입구에 선 오승은 대원.

'바다의 도시' 부산 수영구에 위안부역사관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나요? 실은 20년 넘게 부산에 살았던 저도 몰랐습니다. 지나가다 우연히 간판을 보고 들어가지 않았다면 아직도 몰랐을 겁니다. 그곳은 전기세 낼 돈도 부족해서 관람객이 있을 때만 겨우 불을 켜고 있었습니다. 그 역사관이 눈에 밟혀 무작정 독일로 떠난 스물네 살 오승은입니다. 독일이 '역사 교육 선진국'이라는 말은 얼핏 들었기 때문에 그곳에서는 이런 역사관을 방치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어느 정도 다를지는 가늠되지 않았습니다. 고즈넉한 주택가 사이에 있던 안네 프랑크 교육관부터 베를린 외곽 반제회의 기념관까지. 저는 8개의 역사관, 추모관을 다니며 사람들로 가득 차 있는 모습에 한 번, 그들의 열정적인 모습에 두 번 놀랐습니다. 엄마 손을 잡고 온 아이부터 학생들, 백발의 노인까지 사람들은 가이드의 말을 들으며 질문을 던지기도 하고, 자료를 보며 관람객들끼리 토론을 하기도 했습니다.

반제회의 기념관에서 이야기를 나눴던 교육 담당자 스테겐의 말이 지금도 귓가를 맴돕니다. "과거의 일이니 상관없다고?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은 현재의 당신이 짊어져야 할 책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