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의심했다'는 주관적인 표현을 기사에 쓴 적이 한 번 있다. 김연아가 2009년 12월 ISU(국제빙상연맹) 피겨 그랑프리 파이널(일본 도쿄)의 첫날 쇼트 프로그램에서 2위를 했을 때였다. 김연아는 점프 등에서 두어 차례 실수를 했다. 앞선 2년 가까이 사실상 무적 행진을 하던 '여왕'이 흔들리는 모습이 기자에게도 낯설었다. 어색한 느낌은 오래가지 않았다. 김연아는 이튿날 프리 스케이팅에서 만회하며 우승했다.
'보면서도 믿기 어려웠던 경험'은 작년에 다시 해 봤다. 자카르타-팔렘방(인도네시아) 아시안게임 수영 종목에서였다. 박태환이 대회에 불참하면서 국내에선 관심이 떨어져 있었다. TV로 중계된 수영 남자 자유형 1500m 결선의 승자는 중국 쑨양. 세계기록 보유자였으니 금메달은 어쩌면 당연했다.
그런데 베트남 18세 신예 응우옌 후이 호앙이 2위로 들어오는 순간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2010 광저우대회 때 쑨양에 이어 2위를 했던 박태환의 기록보다 빨랐기 때문이다. 응우옌은 자유형 800m도 3위를 하며 은·동메달 1개씩을 걸었다. 한국 남자 선수단 성적(동 2개)을 앞섰다.
얼마 전 끝난 제23회 아시아 육상선수권(카타르 도하)에선 20국이 129개의 메달을 나눠 가졌다. '오일 머니'를 앞세운 일부 중동 국가가 아프리카 출신 특급 귀화 선수를 앞세워 성적을 내는 흐름이 되풀이됐다. 돈이 전부는 아니다. 한국보다 경제력이 뒤처지는 나라에서도 유망주는 나왔다. 남자 100m에서 은메달을 딴 인도네시아의 라루 무함마드 조흐리는 베트남 수영의 샛별 응우옌과 같은 2000년생이다. 한국은 이 대회 46년 역사상 처음으로 '노메달'이라는 수모를 맛봤다.
국내 체육 현장에선 "기초 종목일수록 선수가 없다"고 아우성이다. 학생들이 방과 후 교실이나 지역 클럽 활동 등을 통해 운동에 대한 재능을 발견하고, 전문적인 지도를 받아 기량을 꽃피우는 것이 이상적인 스포츠 발전 모델이다. 하지만 저출산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어린 세대의 인구 자체가 줄고 있다. 성공이 부와 명성을 보장하는 몇몇 인기 프로 종목이나 기업이 적극적으로 후원하는 일부 종목 외엔 살아남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스포츠는 '눈이 번쩍 뜨이는' 기량과 상품성을 지닌 선수가 이끈다. 1990년을 전후해 태어난 류현진(1987년·야구), 박태환(1989년·수영), 이상화(1989년·빙상), 김연아(1990년·피겨), 손흥민(1992년·축구), 정현(1996년·테니스) 등은 2000년대 중반부터 2010년대에 걸쳐 세계적인 경쟁력을 뽐내며 인기를 끌었다. 2020년대를 빛낼 우리의 국민 스타는 언제 나타날까. 새 스포츠 영웅의 등장에 열광하는 요즘 동남아 국가들이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