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낯선 이의 말 한마디가 인생을 좌우하는 지침이 되기도 한다. 내게도 강렬한 깨달음을 준 이가 있는데, 바로 독일 태생의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아네조피 무터다. 되는 일 하나 없어 잔뜩 웅크리고 살던 백수 시절 동네 도서관은 유일한 도피처였다. 어느 날 서가로 숨어들었다가 우연히 잡지에서 그의 인터뷰 기사를 만났다. 빛나는 업적과 음악 이야기를 무심한 눈길로 읽어 내려가다 마지막 질문에서 우두커니 멈춰 섰다. '젊은 음악인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그는 이렇게 답했다.
"음악을 커다란 하나의 꽃밭으로 생각해라. 그 꽃밭에서 나의 고향이 될 꽃의 종류를 선택해야 한다.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하는 삶이 될 수도 있고, 가르치는 삶이 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유치원 음악 선생님이라도 자신의 열정을 이른 나이의 아이들에게 전달할 수 있다면 아름다운 일이다. 신(神)의 화원은 크다."
순간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멍했다. 최고가 되는 비결 같은 걸 알려줄 거라 생각했는데,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원하는 대로 풀리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다른 길이 있다고, 중요한 건 성취가 아니라 가치라고, 움츠러든 어깨를 토닥여주는 것 같았다.
사회인이 된 지금도 일에 지쳐 몸과 마음이 고달플 때면 그녀의 말을 종종 떠올린다. 그리고 나는 무엇을 위해 일하고 있는지 생각해본다. 한때는 많은 돈을 벌거나 높은 자리에 오르기 위해 일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우리가 하는 일은 세상과 어떻게든 연결된다. 그러니 의미 있는 일이란 만인이 우러러보는 화려한 일이 아니라, 작고 평범하더라도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일이 아닐까.
신의 화원이 아름다운 것도 모두가 저마다 자리에서 각양각색의 꽃을 피워내고 있기 때문이리라. 문득 궁금해진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무슨 꽃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