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단정 숨겨놓고 '한밤의 매복작전' 펼친 해경
北 해역으로 달아나는 中어선 쫓는 밤샘 나포 작전
9시간 만에 中 불법 조업 어선 3척 나포

"팅촨(停船·배를 멈춰라) 팅촨! 한국해양경찰이다. 검문할테니 정지하라."

지난달 28일 오전 2시 20분 인천시 옹진군 연평도 동쪽 16㎞ 해상. 중부지방해양경찰청 소속 서해5도 특수진압대는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11㎞ 침범해 불법으로 조업하는 10톤(t)짜리 중국 어선을 쫓으며 확성기와 경광등을 동원해 중국어로 선박 정지 명령을 내렸다. 이날 오후 8시부터 연평도 인근 해상에서 매복을 시작한 해경·해군의 합동 작전이 6시간여 만에 빛을 보는 순간이었다. 특수진압대원 8명이 탄 10t짜리 작은 고속단정은 파고(波高) 높은 야간 해상에서 시속 80㎞로 중국 어선을 쫓았다. 해경과 해군은 이날 ‘매복→나포’를 반복하는 밤샘 합동 작전 끝에 불법 조업을 하는 중국 어선 3척을 나포했다. 조선일보 디지털편집국은 당시 작전을 지휘한 특별경비단 관계자들과 단속 현장 동영상 등을 통해 당시 상황을 재구성했다.

지난달 28일 새벽 해상에 매복하고 있던 서해5도특수진압대가 NLL을 침범해 불법으로 조업하던 중국 어선에 깃발을 휘두르며 정선명령을 내리고 있다.

◇ 중형함정 옆 고속단정 숨긴 '매복 작전'
이날 중국 어선들은 현장에서 500t에 달하는 해경의 중형함정을 보고 '안심'하며 조업을 계속했다. 밀물과 썰물의 차가 7m까지 벌어지는 연평 동쪽 해역에서는 중형함정이 속도를 내기 어려워 나포(拿捕) 작전에 동원되기 어렵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칠흑같이 어두운 바다에서 갑자기 해경의 고속 단정이 나타나자 중국 어선은 당황하며 급하게 방향을 틀기 바빴다고 한다.

해경은 중국 어선들의 ‘방심’을 역이용했다. 중국 어선들이 중형함정을 보고 마음놓고 조업을 할 때 중형함정 옆에 최대 시속 80㎞로 주행할 수 있는 고속 단정을 몰래 숨겨놓은 것이다. 이른바 ‘매복 작전’이었다. 불법 조업을 하러 내려오는 중국 어선은 대개 10t이 넘지 않는 작은 어선으로, 최대 속도가 시속 80㎞에 이른다. 중형함정으로는 따라잡기 어렵지만, 고속 단정은 최대 속도가 비슷한 중국 어선을 빠르게 추격해 검거할 수 있다.

해경 관계자는 "평소에는 연평도 부두 안 계류 시설에서 대기하다가 불법 조업 어선을 발견한 뒤 출동한다"며 "하지만 매복작전 덕분에 평소 현장 도착까지 걸리는 시간을 30여 분 단축해 불법 조업을 하는 중국 어선을 적발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달 28일 새벽 서해5도특수진압대가 NLL을 침범해 불법 조업을 하던 중국 어선에 정선명령을 내리며 뒤쫓고 있다.

◇칠흑 같은 어둠과 거친 파도 단속현장은 아비규환…목숨 건 조타실 진압
"통신망 이용해 지속적으로 정선 명령 내리고 있으나 도주하고 있다! 변침(變針·항로를 바꿈)한다!".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강하게 이는 파도를 정면으로 맞으며 중국배를 쫓던 해경이 무전에 대고 외쳤다. 경광등을 비추지 않으면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아, 거친 파도소리를 뚫고 서로 소리쳐 상황을 알리는 것이다.

불법 조업을 하는 중국 어선 대부분은 정선 명령을 따르지 않고 북쪽으로 줄행랑을 친다. NLL만 넘어가면 북한 해역이라 한국 해경이 더는 쫓아올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이날도 다르지 않았다. 정선 명령을 무시하고 북쪽으로 달아나던 중국배를 끈질기게 쫓던 해경은 발견 10분 만에 중국 어선에 근접해 진입을 시도했다.

시속 60㎞로 도주하던 어선 꽁무니에 해경 단정을 바짝 갖다 댄 순간, 특수진압대원 두 명이 재빠르게 중국 어선에 올라탔다. 등선한 해경의 첫 번째 임무는 배 엔진을 꺼 도주를 막는 것. 중국 선원들은 조타실 문을 걸어 잠그고 저항했다. 이성계 서해5도경비작전계 주임은 "조타실 진입 과정에서 중국 선원들이 휘두르는 흉기에 부상이 많다"며 "배가 움직여 중심 잡기도 힘들어, 가장 긴장해야 할 순간"이라고 했다.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빠루(쇠지렛대)! 빠루 준비하고 조심해! 조타실 개방 시도한다!" 진압대원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강제로 조타실 문을 따고 들어간 특수진압대는 숨어있던 중국 선원 4명을 줄줄이 검거했다. 이날 중국 어선이 불법 포획한 범게 50kg도 압수했다.

배가 45도 기울 정도로 높은 파도가 일던 지난 28일 새벽 서해5도특수진압대가 NLL을 침범해 불법 조업을 하던 중국 어선이 정선명령에도 응하지 않자 어선에 올라타고 있다.

◇"中 교란작전에 韓 매복으로 반격"
해경과 해군이 합동으로 벌이는 매복 작전은 지난 4월 초 처음 시행됐다. 4~6월 봄 꽃게철을 맞아 NLL을 침범해 불법 조업에 나선 중국 어선에 대한 대응을 강화하려는 목적이다. 실제 서해 NLL 해역에서 조업하는 중국 어선은 올 초 하루 평균 20척 수준이었으나 4월 들어 30척 이상으로 증가했다.

최정민 서해5도경비작전계장은 "중국 어선들도 머리를 써서 한 번에 100척 이상 NLL을 침범해 내려와 교란 작전을 펼치기 때문에 나포가 쉽지 않다"며 "눈치가 빠른 중국 어선들의 전술을 깨기 위해 우리도 매복과 같이 우리만의 전술을 개발해 대응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지난 28일 새벽 서해5도특수진압대가 NLL을 넘어 불법 조업을 하던 중국 어선에 등선해 조타실 문을 걸어잠구고 대항한 중국인 선원들(오른쪽 사진 주황색 옷)을 검거하고 있다.

이날 특수진압대·해상특수기동대 17명과 해경 특수진압대 지휘함 등 총 7척이 동원된 ‘한밤의 매복 작전’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중국 어선을 나포한 뒤 20분 후 해경은 또다시 범게 20kg을 불법으로 잡고 있던 5t짜리 중국 어선을 적발했다. 그리고 다시 작전에 들어갔다.

오전 4시 50분, 해경은 세 번째 중국 불법 조업 어선 나포에도 성공했다. 이날 해경과 해군은 10시간에 걸친 합동 매복 작전으로 불법 조업 어선 3척을 나포하고, 선장 우모(46)·왕모(28)·장모(44)씨 등 중국인 13명을 검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