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토록 갈망하던 장수(長壽)가 심각한 사회문제가 될 것이다." "민족, 국가, 사회 제도, 교육, 가족, 사랑, 행복 등 모든 개념을 다시 생각해야 할는지도 모른다."

최재천(맨 왼쪽) 이화여대 석좌교수가 25일 열린 조선일보 100년 포럼에서 '인생 이모작과 통섭'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수명 100세 시대의 도전과 대응'을 주제로 열린 이날 포럼에는 최 교수와 염재호(맨 오른쪽) 대표를 비롯해 김정기, 김정운, 김지운, 박소령, 양정웅, 유현준, 윤희숙, 전재성, 정과리 위원이 참석했다.

지난 25일 열린 조선일보 100년 포럼의 주제는 '수명 100세 시대의 도전과 대응'이었다. 염재호 포럼 대표를 포함한 위원 11명은 의학과 기술 발달에 따른 수명 연장이 가져올 미래의 변화, 고령화와 저출산 문제 해결 방안 등을 놓고 3시간 넘게 열띤 토론을 벌였다. 참석자들은 정부의 돈 쏟아붓기식 저출산 대책은 성공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봤다. 대신 적극적 이민 정책 실시, 연금·교육 제도 개혁, 존엄사 합법화, 정년과 임금피크제 개선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다잉 코리아? "고령자 리사이클 필요"

주제 발표를 맡은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다이내믹(dynamic·역동적) 코리아가 다잉(dying·죽어가는) 코리아가 됐다"고 했다. 지난해 합계 출산율 0.98을 기록할 정도로 저조한 상태에서 기대 수명은 빠른 속도로 늘어나 세계에서 가장 빨리 늙어가는 나라가 됐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2006년부터 정부가 153조원을 쏟아부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며 "초혼 연령을 앞당기고 아이를 낳을 여건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수명 100세 시대가 현실로 다가오면서 고령 인구를 바라보는 눈을 바꿔야 한다는 시각이 많았다. 염재호 전 고려대 총장은 "고령 인구는 '폐기' 대상이 아닌 '리사이클(재활용)'할 수 있는 자원"이라며 "젊은 세대가 (노인 세대를) 먹여 살린다는 개념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전재성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고령의 삶을 비관적으로 보지 않고, 세대 간 갈등을 줄일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30대 포럼 위원인 김지운 셰프는 "생산성 때문에 정년(停年)이 필요하다는데, 연장자들의 지혜가 가져오는 효율성도 크다"며 "4050세대도 소셜미디어나 코딩, 유튜브 등 새로운 트렌드를 받아들일 수 있다면 고령화가 두렵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적극적 이민자 수용 불가피한가

저출산·고령화 사회의 숙제로 노동 인구 감소를 우려한다. 이날 포럼에선 "적극적 이민(移民) 수용이 해결책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왔다. 윤희숙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아직은 제한적 이민 정책을 펴고 있지만, 미래엔 훨씬 확대될 수밖에 없다"며 "이민자 증가가 고령 인구의 노동시장 참여와 충돌하는 문제는 없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과리 연세대 교수는 "이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프랑스의 성공을 참조할 만하지만, 단일민족이라는 고정관념이 강한 국내 정서가 관건"이라고 했다. 유현준 홍익대 교수는 "이민 정책을 대폭 확대하면 도시 슬럼화나 지하경제 창궐, 치안 불안 등 부작용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기존 연금 제도와 임금피크제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윤희숙 교수는 "다음 세대한테 돈을 걷어 노후를 보장받는다는 기대가 얼마나 허망한지 이제는 정부가 정직하게 말해야 한다"고 했다. 최재천 교수는 "아이를 본격적으로 키우는 시기에 임금이 가장 많아야 한다"며 "50대에 스스로 정년을 정하고, 월급을 줄이는 대신 고용 기간을 연장하는 '유연 정년제' 도입을 검토할 만하다"고 말했다.

◇가족 해체, 존엄사 합법화 고민해야

인간의 수명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가족 개념이나 삶의 의미를 새롭게 돌아봐야 할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김정운 여러가지문제연구소 소장은 "앞으로 100년을 살 수 있게 되는데 평균 수명 30~40세이던 시절에 만들어진 사회 윤리나 가치관도 변해야 하지 않는가"라며 "전통적 가족 개념은 해체되고, 낭만적 사랑의 가치도 바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김정기 한양대 신방과 교수는 "가족, 양육, 사랑, 유대감 등이 사라진다면 기술 발전이 더 가져다줄 수십 년의 삶이 무슨 의미가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연 연출가인 양정웅 서울예대 교수는 "수명 증가, 고령화 등 급변하는 사회에 화두를 던지는 문화·예술 콘텐츠가 많이 만들어져 국가·문화·인종 상관없이 활발히 소통하는 게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바라보는 세대 간 시각차도 있었다. 박소령 퍼블리 대표는 "지금 2030세대는 임금피크제나 정년에 관심에 없고, 늙어서 국민연금 받을 것으로 기대도 하지 않는다"고 했다. 박 대표는 "저 같은 젊은 세대는 백 살까지 사는 것보다 스위스처럼 존엄사를 합법화하는 이슈에 더 공감하는 것 같다"며 "미래에는 인간의 수명도 양극화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