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송홧가루가 날리는 철이다. 도시에서는 세워둔 차에 노란 가루가 내려 앉아 천덕꾸러기 신세라지만 해송이 밀집한 전남 신안 등지의 염전에서는 송홧가루가 또 다른 대접을 받는다. 천일염전에 송홧가루가 날려 와 쌓이는 열흘 남짓 사이 몸에 좋다는 명품 '송화소금'을 만들기 때문이다.

이 무렵은 우리의 서남해안으로 미식여행을 떠나기에도 딱 좋은 시즌이다. 만물이 활착하는 시기로, 음식의 간을 내는 맛난 송화소금부터 다양한 식재료가 넘쳐난다. 특히 산란철을 앞둔 꽃게, 준치, 갑오징어, 도미 등 통통하게 살이 오른 다양한 어족이 몰려들어 제철 미식거리에 당당히 제 이름을 올려놓는다.

◇영원한 밥도둑 '꽃게'

"꽃게살 무침 싸들고 부모님 찾아간 아들이 이웃 노인한테 한번 자셔보라고 권했다가 즈그 밥까지 다 뺐겨부렀다고 안합디여~"

몇 년 전 목포에서 만난 한 꽃게요리 전문점 주인장의 구성진 입담이 아직도 귓전에 생생하다. 꽃게무침을 싸들고 고향집을 찾았던 한 젊은이가 옆집 노인에게 인사로 한 술 권했다가 빚어진 에피소드란다.

그의 말마따나 과연 5월의 꽃게 맛은 별미 중의 진미다.

꽃게는 간장게장, 무침, 찜, 탕 등 다양한 요리로 맛볼 수 있다. 도시에서는 주로 간장게장 정식을, 산지에서는 더 다양한 요리를 맛볼 수 있는데, 포구에서 맛보는 신선한 꽃게찜이란 그 맛이 달달하기까지 하다. 간장게장 게딱지에 따끈한 밥한 숟가락을 넣고 비벼 먹는 맛도 꿀맛이다. 특히 요즘은 간장게장을 짜지 않게 담가 먹기에 부담도 적다. 나트륨 섭취에 신경을 많이 쓰는 분위기 때문이다.

잃어버린 입맛 되찾기로는 빨갛게 무친 양념게장도 빼놓을 수가 없다. 그 부드러운 게살과 매콤 달콤한 양념이 어우러지니 다이어트는 미뤄둬야 할 판이다. 오뉴월 햇마늘 철엔 마늘줄기를 어슷하게 썰어 꽃게무침과 함께 버무려 내면 그 궁합이 절묘하다.

목포사람들은 꽃게를 더 간편하게 즐긴다. 꽃게살 무침이 그것이다. 부드러운 꽃게의 생살을 발라 양념에 무치니 먹기가 한결 편하다. 꽃게살 무침을 제대로 하는 집에서는 봄철엔 알밴 것을 생물로 쓰지만 알이 얼면 본연의 맛이 살짝 떨어지는 관계로 냉동한 것은 수놈만을 골라 쓴다.

꽃게살 무침은 꽃게를 가장 맛나게 먹는 방법 중 하나다. 부드러운 꽃게 살과 고추 가루, 마늘, 생강, 간장 등 매콤 달콤한 양념이 어우러지니 여느 양념꽃게장과는 또 다른 풍미를 담아낸다. 특히 뜨거운 밥에 쓱쓱 비벼 한 숟갈 오물거리자면 혀에 척척 감기는 듯 부드러운 맛이 일품이다. 앞선 에피소드에 등장한 이웃집 노인이 잠시 실수를 할 법도 하다.

◇어물전의 몸짱 '준치'

"여수서 '서대회' 하대끼(하듯이), 목포서는 준치가 최고랑께요"

목포 미식가들은 이맘때 최고 미식거리로 준치회 또한 빼놓지 않는다. 그중 5월 준치는 예로부터 별미 중 으뜸으로 꼽혀왔다. 본래 보리 벨 때가 준치 철이라고 했지만 요즘은 수온 상승 등으로 그 철이 약간 앞당겨졌으니 지금이 제철인 셈이다. 서유구의 난호어목지에도 준치를 시어(時漁), 한글로 '준치'라고 적고 있다. 준치의 출몰 시기가 항상 음력 4, 5월로 정해져 있기에 '시(時)'자를 따서 이름을 붙인 것이다.

우리나라 서남해안에서 주로 잡히는 준치는 청어과에 속하는 등 푸른 생선이다. 성어의 몸길이가 50㎝ 남짓으로 제법 큰데, 몸이 길쭉 납작하고 배는 은백색이다.

흔히 잔칫상에는 오르는 준치는 찜요리이지만, 신안, 목포 등 산지에서는 준치를 주로 회무침으로 먹는다. 바로 회를 친 싱싱한 준치를 맛깔스런 초고추장, 야채 등과 버무려 접시에 수북이 담아 놓고 술잔을 기울인다.

준치회는 매실식초로 풍미를 낸다. 이를 통해 새콤달콤한 맛을 내는가 하면 준치 특유의 비린내까지 잡는다. 여기에 사과를 갈아 넣고, 고추장, 고춧가루, 마늘, 생강, 소주 등을 추가해 무침 소스도 만든다.

준치 살은 무척 부드럽다. 광어나, 숭어 등의 쫄깃함과는 달리 슬슬 녹는다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더불어 미나리, 오이, 양파 등 함께 버무린 야채는 아삭한 것이 봄기운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포를 뜨고 남은 뼈로 끓인 매운탕 국물도 구수하고 시원하다.

준치회는 모양이 좀 다르다. 일반 횟감처럼 납작하게 포를 뜨지 않고 길게 채를 썬다. 전어회와 비슷한데, 잔가시 때문이다. 요령껏 가시를 피해 포를 뜬다 해도 워낙 연한 살 속에 가시가 많이 박혀 있어 조금의 질감은 남는다. 이 또한 준치회 특유의 미각이다.

준치회는 안주로도 좋지만 갓 지은 따끈한 쌀밥과도 곧잘 어울린다. 밥 따로 회 따로 놀지 않고 쓱쓱 비벼먹기에도 그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