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 사후 10년 만에 과거 아동 성폭행 의혹이 재점화되면서 미국·영국 등 서구권에서 마이클 잭슨의 노래와 각종 콘텐츠 제거 작업이 거세게 일고 있다. 라디오에선 그의 노래를 틀지 않고, 출판가에서는 그에 대한 책 출판을 중단하기까지 한다. '마이클 잭슨판 역사 청산'이라고 할 정도다. "최근 2년간 미투(Me too·성폭력 고발) 단죄 대상이 된 세계 유명 인사 중 가장 큰 문화 권력자"(시사 주간지 타임)란 말이 나온다.
마이클 잭슨은 "등장 자체가 20세기 문화사의 가장 중요한 사건" "인종적 취향의 벽을 무너뜨린 대중음악계 혁명"이란 찬사를 받은 미국 싱어송라이터로 '벤' '빌리진' '스릴러' '위아더월드' 등 많은 히트곡을 냈다. 1958년 가난한 흑인 가정에서 태어나 11세에 형제들과 '잭슨 파이브'로 활동을 시작했으며, 만 50세인 2009년 6월 25일 프로포폴 과다 투약으로 사망했다.
그런데 올해 잭슨 10주기를 맞아 세계적인 추모 열풍과 함께 가장 추악한 폭로와 비방전이 뒤범벅되고 있다. 지난 1월 미 선댄스영화제에서'네버랜드를 떠나며(Leaving Neverland)'라는 4시간짜리 다큐멘터리 영화가 상영된 게 논란을 다시 지폈다. '네버랜드'는 잭슨의 캘리포니아 대별장 이름으로 피터팬에 나오는 어린이들만 사는 섬에서 땄다. 잭슨은 이곳에 환경이 불우하거나 연예인을 지망하는 어린이 팬 수십명을 가족과 함께 초청했다. 그중 1980~90년대 이곳을 거쳐 간 호주의 남성 댄서 웨이드 롭슨(40)과 미국 배우 제임스 세이프척(36)이 다큐에서 각각 7세·10세 때부터 수년씩 잭슨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롭슨과 세이프척은 "잭슨이 내 온몸을 만지고 자신의 성적 행위를 보게 했다" "술을 먹이고 포르노를 억지로 보게 했다" 등의 폭로를 쏟아냈다. "가족에게 재정적 도움을 줬기 때문에 엄마가 말도 못 꺼내게 했다"고도 했다. 두 사람은 2013~2014년에도 잭슨의 유가족을 대상으로 같은 내용으로 총 1조6000억원 규모의 피해 배상 소송을 낸 적이 있다. 당시 법원은 사망자에 대한 소송 가능 기간(1년)이 지난 데다 주장만으론 증거가 되지 않는다며 기각했다.
유독 아이들을 좋아하고 후원해온 잭슨을 두고 아동성애(pedophile) 의혹이 제기된 건 오래전이다. 1993년과 2005년 아동 성추행으로 소송당했으나 모두 무혐의 처리됐다. 미 연방수사국(FBI)까지 비밀리에 10여년간 그를 추적했지만 이렇다 할 혐의를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법리적으론 이전 상황과 달라진 게 없다. 다만 2017년부터 시작된 '미투'의 영향으로 피해자의 호소에 공감해야 한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여론 재판'이 즉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다큐 영화가 지난 3월 미 HBO와 영 BBC 등에서 방영되면서 여론이 뒤집어졌다. 오프라 윈프리의 "잭슨의 과거는 인간성에 대한 재앙"이란 비난을 시작으로 유명인들의 "역겹다" "잭슨의 음악을 다시는 듣지 않겠다"는 '양심선언'이 이어졌다.
'잭슨 불매(boycott) 운동'도 전례 없는 수준이다. 영 BBC 라디오를 비롯, 뉴질랜드·캐나다·네덜란드 등 10여개 국가에서 최대 라디오 네트워크들이 잇따라 잭슨의 노래를 선곡 리스트에서 지웠다. 영국 맨체스터의 국립 축구박물관에선 잭슨 동상이 치워졌다. 프랑스 명품 기업 루이뷔통은 마이클 잭슨에게 헌정하려던 2019 FW 남성복 라인의 생산을 중단했다. 미국에선 잭슨 10주기 기념 뮤지컬이나 전기(傳記) 10여권 제작도 모두 잠정 중단됐다. 잭슨의 고향인 LA의 프로농구팀 레이커스는 '빗잇'을 응원곡에서 삭제했고, 모교 가드너스트리트 초등학교에선 잭슨에게 헌정된 대강당에서 그의 이름을 파내느냐를 두고 학부모와 교직원들을 상대로 투표를 벌였다.
잭슨의 유가족은 '네버랜드를 떠나며'가 두 남성의 일방적 주장만 왜곡해서 편집했다며 "망자를 상대로 한 공공 린치"라며 반발, 상영·보도 금지 신청과 명예훼손 소송 등을 냈다. 팬들도 "흑인의 우상을 파괴하고 재산을 가로채려는 음모"라며 '잭슨 노래 다시 듣기' 운동을 벌이고 맞불 다큐 영화(Neverland Firsthand)를 급히 제작해 유튜브에 올리거나 '잭슨 무죄'라는 광고판을 런던 2층 버스 60대에 붙였다.
뉴욕타임스·가디언 등 정통 언론들은 잭슨의 최측근, 전기작가 등을 인터뷰해 "잭슨 의혹은 여전히 판단하기 어려운 미스터리"라고 조심스럽게 보도하고 있다. 온라인 매체 슬레이트는 "설사 마이클 잭슨에게 사생활 문제가 있었다 해도 그 작품은 별개로 다뤄야 한다. 성폭력으로 단죄하자면 영국 소설가 찰스 디킨스부터 가수 엘비스 프레슬리까지 파헤칠 무덤이 수없이 많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