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욱 외교 비록|정종욱 지음|기파랑|296쪽|1만5000원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였던 저자는 1993년 안식년을 맞아 미 워싱턴에 머물 예정이었다. 하지만 워싱턴에 도착하자마자 "잠시 한국에 들어와 달라"는 상도동의 전화를 받고 다시 귀국했다. 김영삼 당시 대통령 당선인은 대뜸 "청와대 수석비서관 명단 발표 예정이니 그리 알라"고 말했다. 저자는 워싱턴 지인들의 환영 만찬에도 참석하지 못한 채 청와대에 들어갔다.

1993~1994년 1차 북핵 위기 당시 외교안보 수석비서관이었던 저자의 회고록이다. 1993년 북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로 불거진 위기는 이듬해 제네바 합의로 봉합되는 듯했다. 하지만 2017년 김정은의 핵 실험으로 미봉책에 불과했다는 것이 드러나고 말았다.

저자는 자성적인 복기(復碁)를 통해 "현재 북한이 비핵화를 실천할 것이라는 기대는 1차 핵 위기에서 얻은 교훈과 배치되는 희망적 사고"라고 진단한다. "핵은 김정은의 북한에 최종 병기이자 체제를 지탱하는 기둥"이며 "북은 핵무기 숫자를 줄이는 감축 협상에는 응하지만 핵을 포기할 생각은 없다"는 것이다. 냉철한 결론에 자연스럽게 귀 기울이게 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