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완 논설위원·과학전문기자

지난달 1일 일본 문부과학성은 동물의 수정란에 인간 세포를 주입하고 나중에는 인간 유전자가 들어 있는 새끼의 출산까지 허용하겠다고 발표했다. 현지 언론들은 동물의 몸에서 신장이나 췌장 같은 인간 장기(臟器)를 만드는 연구가 본격화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그전까지 일본은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인간과 동물의 수정란을 섞는 것을 금지했다. 일본이 재생 의료 분야에서 정부 규제를 잇달아 철폐하며 세계 연구의 주도권을 노리고 있다. 일본은 이미 줄기세포 분야에서 규제 철폐의 효과를 거뒀다. 동물에서 얻은 장기를 환자에게 이식하는 이종(異種) 장기이식에서도 그걸 시도해보려 하는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2005년 황우석 사태 이후 줄기세포 연구가 정체에 빠진 데 이어, 최근 불거진 유전자 치료제 인보사 논란으로 모처럼 추진되던 바이오 규제 완화 움직임도 제동이 걸렸다. 전문가들은 "옥석(玉石)을 가리는 지혜가 절실하다"고 지적한다.

◇'돼지 몸에서 인간 장기 생산' 규제 풀어

동물 몸에서 만드는 인간 장기는 '키메라(chimera) 장기'로 불린다. 신화에 나오는 키메라가 여러 동물의 몸이 섞인 것처럼 사람과 동물의 몸이 한데 섞였다는 의미다. 원리는 이렇다. 동물의 정자와 난자가 만나 생긴 수정란에서 특정 장기를 만드는 유전자를 차단한다. 그냥 두면 수정란은 해당 장기가 없는 상태로 자란다. 하지만 인간의 줄기세포를 주입해 키우면 나중에 해당 장기를 추출해 인간 장기로 대체해 쓸 수 있다.

나카우치 교수

문부과학성의 발표가 있던 날, 도쿄대 의대의 나카우치 히로마쓰 교수가 대학윤리위원회에 돼지 몸에서 인간 췌장을 키우는 연구에 대한 승인을 신청하겠다고 밝혔다. 췌장은 인슐린을 분비하는 세포를 갖고 있다. 이식용 인간 췌장이 대량 공급되면 당뇨병 환자 치료에 획기적인 변화가 올 수 있다. 나카우치 교수는 정부의 규제가 과학 연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잘 보여주는 예이다. 그는 도쿄대 의대 줄기세포치료연구센터 소장으로 이 분야 연구를 주도했다. 2010년 몸집이 큰 시궁쥐의 줄기세포를 췌장 유전자를 차단한 생쥐의 수정란에 이식했다. 나중에 생쥐의 몸에서는 시궁쥐의 췌장이 자라났다. 2013년에는 종이 다른 돼지들을 대상으로 같은 방법을 성공시켰다.

하지만 일본에서의 연구는 딱 거기까지였다. 목표인 인간 장기 연구는 규제 때문에 할 수가 없었다. 나카우치 교수는 2014년 미국 스탠퍼드대로 자리를 옮겼다. 미국은 정부 차원의 연구 지원은 안 되지만 민간 차원의 연구는 허용했다. 캘리포니아재생의학연구소는 바로 600만달러의 연구비를 지원했다. 나카우치 교수는 2017년 시궁쥐의 몸에서 생쥐의 췌장을 자라게 한 다음, 이를 당뇨병에 걸린 생쥐에게 이식했다. 당뇨병은 치료됐다. 키메라 장기의 질병 치료 가능성을 입증한 것이다.

나카우치 교수의 성공은 미국 국립보건원(NIH)이 키메라 장기 연구에 정부 연구비를 지원하도록 규제를 완화하는 계기가 됐다. 같은 해 미국 소크연구소는 돼지 수정란에 인간 줄기세포를 주입해 나중에 인간의 장기 세포들이 자란 것을 확인했다. 연구의 주도권이 완전히 넘어가려는 순간, 일본 정부는 과감한 규제 철폐로 나카우치 교수를 다시 국내로 귀환시킨 것이다.

◇줄기세포와 키메라 장기 결합해 시너지

일본은 앞서 줄기세포 치료제에서 규제 철폐의 효과를 톡톡히 봤다. 교토대의 야마나카 신야 교수는 성인의 피부 세포에 특정 유전자를 넣어 수정란에 있는 배아줄기세포 같은 원시세포로 만들었다. 바로 '유도만능줄기세포(iPS 세포)'다. 여기서 병든 곳을 대체할 다양한 세포들이 자라난다. 특히 iPS 세포는 배아줄기세포처럼 난자나 수정란을 파괴하지 않아 생명 윤리 논란에서 자유롭고, 환자 자신의 세포로 만들어 면역 거부 반응도 차단할 수 있다.

신야 교수는 2012년 노벨상을 받았다. 일본 정부는 이를 계기로 2014년 법을 개정해 줄기세포 치료제는 초기 임상시험만 마치면 일단 허가하고 치료 과정을 보며 부작용 여부를 감시키로 했다. 덕분에 줄기세포 치료제 개발이 3년까지 앞당겨지고 개발비도 수백억원씩 줄어드는 효과가 발생했다. 신야 교수의 연구에 정부와 기업이 각각 2000억원을 투자했으며, 개인 기부도 1270억원을 넘었다. 일본은 현재 세계 최초로 파킨슨병과 망막 질환 환자에게 iPS 세포 치료제를 임상시험하고 있다.

iPS 세포 연구는 키메라 장기 연구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이동률 차의과대 교수는 "돼지나 양의 수정란에 환자의 피부 세포로 만든 iPS세포를 주입하면 맞춤형 장기를 만들 수 있다"며 "일본은 자국이 강점을 가진 분야에서 잇따라 규제를 철폐해 시너지를 노린다"고 말했다.

키메라 장기는 전 세계적인 이식용 장기 부족 사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미국은 장기이식 대기자가 11만6000명을 넘으며 매일 20명이 장기이식을 받지 못해 숨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현재 약 3만8000명이 장기이식을 기다리고 있지만, 장기 기증자는 매년 500명 수준에 그치고 있다.

◇국내선 해외와 반대로 규제 강화 움직임

하지만 국내에서는 생명윤리법이 관련 연구를 차단하고 있다. 게다가 최근 코오롱생명과학의 관절염 유전자 치료제 인보사에 허가 성분과 다른 성분이 들어 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면서 바이오 규제를 강화하자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이달 초 국회가 세포·유전자 치료제의 신속 허가(패스트트랙) 등을 담은 첨단재생의료법을 통과시키려 했지만 인보사 사태로 무산됐다. 업계는 물론, 규제 기관인 식품의약품안전처까지 나서 "법이 제정돼야 바이오 의약품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더 세심하게 관리할 수 있다"고 호소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인보사 파문에 얼어붙은 한국 바이오… "키메라 장기는 연구조차 못해"

국내에서 바이오 규제 완화 차원의 첨단재생의료법 통과가 무산되면서 당장 국책 과제인 이종 장기 이식 프로젝트에 차질이 생겼다. 박정규 바이오이종장기개발사업단장(서울대 의대 교수·사진)은 "올해 돼지 각막과 췌도 세포를 환자에게 이식하는 임상시험을 추진했지만 최근 유전자 치료제 인보사를 둘러싼 논란의 영향으로 제대로 이뤄질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사업단은 그동안 돼지 장기를 인간과 같은 영장류인 원숭이에게 이식하는 실험을 했다. 이를 통해 지난해 인체 임상시험이 가능하다는 평가를 국제학계로부터 받았지만 국내에는 이를 관리할 법이 없어 추진하지 못했다. 다행히 지난해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이종 장기를 세포 치료제에 준해 임상시험을 하도록 허가했다. 그런데 하필 유전자 세포 치료제인 인보사가 논란이 되면서 일정에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박 단장은 "최근 사태로 유전자치료제 전체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고 임상시험 절차를 논의할 공무원들마저 모두 그쪽 현안에 매달리고 있다"며 "임상시험은 언젠가 할 수 있겠지만 상용화를 위해선 법 통과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박 단장은 최근 일본의 규제 철폐를 거론하면서 "동물에게서 키우는 키메라 인간 장기는 이종 장기 이식이 가야 할 종착역인데 국내에서는 생명윤리법 때문에 아예 연구조차 못하고 있다"고 했다. 최근 일부 교수가 관련 연구를 하려고 대학윤리위원회에 문의했지만 국내법에 위반된다고 거절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단장은 "세계는 달려가는데 우리는 안에서 발목이 잡혀 안타깝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