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모임인 '전대협'이 전국에 문재인 대통령과 여권을 풍자한 대자보를 붙인 것에 대해 내사(內査) 중인 경찰이 모욕죄나 명예훼손죄 적용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15일 확인됐다. 대자보로 인해 문 대통령의 명예가 훼손됐다고 볼 수 있다는 취지다.

전국 17개 지방경찰청 가운데 15곳에서 대자보 신고가 접수돼 관련 내사가 이뤄지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각 지방경찰청에서 사실관계를 파악하면 서울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가 이를 취합해 정식 수사로 전환할지 판단할 예정"이라고 했다.

전대협은 만우절이었던 지난 1일 전국 450곳에 '남조선 학생들에게 보내는 서신'이라는 제목의 대자보를 붙였다. 북한의 선전·선동 기법을 흉내 내며 대통령과 여권을 풍자했다. 경찰에 따르면 서울에서는 대학, 국회, 대법원 등 13곳에 28장이 붙었다.

경찰은 북한의 선전·선동 기법과 문구를 차용했지만 국가보안법은 적용하기 어렵다고 봤다. 경찰 관계자는 "대자보를 표현의 자유로 봐야 하는 측면도 있지만 모욕죄나 명예훼손죄가 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전국 경찰청이 일제히 내사하는 데 대해서는 "시간이 지나면 증거 확보조차 안 될 수 있어 사실관계를 확인해 놓는다는 취지"라고 말했다.

하지만 무리한 법 적용이라는 의견도 있다. 언론법에 정통한 한 판사는 "모욕죄는 욕설이나 비속어가 있어야 하는데 대자보에선 '태양왕 문재인', '고용왕 문재인' 등 반어적 표현만 있고 욕설에 해당하는 부분을 찾기 어렵다"며 "명예훼손죄도 풍자나 패러디에 대해선 성립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경찰이 여권 눈치를 보며 무리한 내사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보수 단체인 '행동하는 자유시민'은 이날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정치적 비판을 봉쇄하기 위한 불법적인 공권력 행사"라며 수사 중단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