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새벽(한국시각)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정상회담에 대해 국내 전문가들은 북핵 문제 해결 방식에 대한 양국 간의 입장 차를 확인하는 자리였다고 평가했다. 또 이번 회담에서 나타난 트럼프 대통령의 태도로 볼 때 앞으로도 대북 강경 기조를 계속 이어갈 것이란 전망을 내놨다. 문 대통령이 추진하겠다고 밝힌 4차 남북정상회담도 이른 시일 내에 성사될 가능성은 낮다고 봤다. 다만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한미 공조의 틀을 확인하고, 미북대화를 재개할 수 있는 최소한의 가능성을 발견했다는 견해도 있었다.

남주홍 신범철 전성훈(윗줄 왼쪽부터) 최강 조한범 남성욱(아랫줄 왼쪽부터)

◇ "文·트럼프 입장차 확인" vs "한미공조 중요성 깨닫는 기회"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정상회담 후 공동성명이나 공동언론발표 대신 개별발표를 했다. 외교가에서는 "양국의 의견 차이 때문에 공동 발표가 불가능했던 것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실제 이날 공개 회담에서 양 측은 사안별로 큰 입장차를 보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재개를 위한 부분적 제제완화에 부정적 입장을 밝혔고, 비핵화까지 제재를 유지하겠다고 했다. 3차 미북정상회담 재개에 대해서 문 대통령은 '조속한 재개'를 말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단계적 절차(step by step)'와 '속도조절'을 강조했다. 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한을 요청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명확한 수락 의사를 밝히지 않은 것도 입장차를 보여준다.

이에 대해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한미 양국의 입장 차만 확인하고 돌아온 자리"라고 평가했다. 남주홍 전 국정원 1차장은 "이번 회담은 문 대통령이 트럼프를 설득하러 간 자리였는데, 결과적으로는 트럼프가 문 대통령에게 미국의 입장을 확인해주는 모양새가 됐다"고 했다.

전성훈 전 통일연구원장도 "정부는 이번 회담에서 스몰딜이라고 해도 구체적인 제재완화에 대한 미국 측의 답변을 기대했을 것인데 그렇지 못했다"며 "결과적으로는 한국 정부 의도대로 되지 못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최강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은 "한국에 대한 미국의 신뢰 회복의 계기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남북관계 진전은) 미국 없이는 안된다는 교훈을 얻은 것도 득이라면 득"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만 "청와대는 문 대통령이 트럼프를 만나 설득하면 문제를 풀 수 있을 거라고 판단한 것 같은데, 이는 오판으로 확인됐다"고 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이번 회담은 미국과 북한이 대화의 동력을 이어가는 계기를 만들어 준 것만으로도 성공"이라고 했다. 그는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하노이회담 결렬로 대내외적으로 코너에 몰린 김정은이 대화에 다시 나설 수 있도록 명분을 만들어줬다"며 "앞으로 한미정상회담, 대미특사, 3차 미북정상회담 순으로 대화가 진전될 것"이라고 했다.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재개 등 대북제재 완화 가능성 낮아져

트럼프 대통령은 문 대통령과의 단독회담 때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재개 등 대북 지원 문제를 논의할 것인가'는 기자의 질문에 "지금은 적기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전날 북·미 대화를 총괄하는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대북제재에 여지를 두고 싶다"고 말하면서 일각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일부 제재 완화의 뜻을 비추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었다.

이에 대해 남주홍 전 차장은 "최근 며칠새 폼페이오 장관이 언급한 약간의 '여지'의 뜻을 트럼프가 명확히 해 줬다"며 "규제 완화는 소규모의 인도적 지원. 결핵약품지원 등. 그런 것들이 포함된다는 것일 뿐 남북 교류의 물꼬를 터준단 것은 아니라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또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김정은에 대한 간접메시지"라며 "북한이 비핵화에 대한 실질적인 조치를 하지 않는다면 추가 회담도 없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미· 북 관계는 현상유지가 아니라 교착상태로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스몰딜·굿이너프딜은 거부한 트럼프 vs "트럼프도 포괄적 합의-단계적 이행엔 합의"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회담에서 '단계적(스텝바이스텝)'이라는 표현을 3번이나 사용하고 문 대통령의 ‘굿 이너프 딜(충분히 좋은 합의)’이 아닌 '올바른 합의(the right deal)'을 강조한 점을 주목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결국 '굿 이너프 딜'은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뜻"이라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왼쪽)과 트럼프 대통령이 11일 오후(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오벌오피스에서 친교를 겸한 단독회담을 하고 있다.

남 전 차장은 "트럼프가 실무차원에서 모든 합의를 이룬 후에 최종결정은 위에서 하는 진정한 의미의 '톱다운'을 할 것을 돌려 말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반면 최강 부원장은 "정부가 이번 회담에서 미국의 전향적인 입장 표명을 바랐던 것은 아니라고 본다"며 "그런 차원에서 굿 이너프 딜은 거부당했지만, 비핵화 조치에 성공한다면 ‘얼리 하베스트(early harvest·조기수확)’까지는 어느정도 합의에 이룬 것으로도 보인다"고 했다.

조한범 연구위원은 "한미회담의 행간을 보면 포괄적 합의, 단계적 이행에 미국도 합의했다고 봐야 한다"며 "트럼프가 대북 강경파들이 요구하는 WMD(대량살상무기)제거가 아니라 핵무기 제거를 요구한 것이 단적인 예"라고 했다. 조 위원은 "내년 미국 대선 전까지 북한이 비핵화 로드맵을 내놓고, 초기 조치를 할 경우에는 합의가 가능하다고 읽혔다"고 했다.

최 부원장은 다만 "문 대통령으로서는 북한의 결단을 앞으로 받아내야 하는 숙제를 안게 됐다"며 "미국은 이번에 신뢰 회복을 했다고 하더라도 북한으로부터 어떤 타협점을 이끌어낼 지 테스트를 하게 될 것"이라고도 했다.

◇조기 4차 남북정상회담 성사 어려워... 교착상태 계속

문 대통령은 이번 회담에서 4차 남북정상회담을 조만간 추진하겠다고 했다. 청와대는 이를 위해 대북특사 파견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선 성사될 가능성과, 성사 시 성과를 두고 의견이 엇갈렸다.

신범철 센터장은 "한국 정부는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돌파구를 마련하려고 하겠지만, 북한이 원하지 않을 것"이라며 조기 성사 가능성을 낮게 봤다. 남성욱 고려대 교수는 "북한은 현재 내부적으로 자력갱생을 도모하고 있고, 또 (하노이회담 불발로) 불편한 김정은의 심기를 맞추느라 허둥대는 상황"이라며 했다. 남 교수는 "남북정상회담을 연다고 해도 한국이 북한에 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지 않나"라고 했다. 전성훈 전 원장도 "한국 정부가 미국과 각을 세우며, 국제법을 위반하면서까지 북한을 도울 수는 없다"며 "앞으로 4차 남북정상회담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내년에 트럼프의 대선 재선 도전 때문에 트럼프의 대북 기조가 더욱 원칙에 입각해 강고해질 것으로 전망했다. 전 전 원장은 "미국 국내 정치 차원에서 미북 간 긴장이 유지 강화되는 것이 선거에 더 유리할 것이라고 트럼프 대통령이 판단할 수도 있다"며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 출구 전략을 제시한다면, 그 과정에서 단기적으로 부분 해제도 가능하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커 보이진 않는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