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만에 세상으로 끌려나온 위키리크스 설립자 줄리언 어산지(47)에 대한 세계 여론의 첫 반응은 그의 충격적인 외모 변화였다. 과거 가죽 재킷을 걸친 날렵한 몸매에 차분한 눈빛, 풍성한 은발은 간데없고 구부정하고 부은 몸에 벗어진 머리, 아무렇게나 자란 턱수염에 불안한 표정으로 횡설수설했다. 그는 수십만건의 미국 정부 기밀문서를 폭로한 후 런던 주재 에콰도르 대사관에서 망명 생활을 하다 11일(현지 시각) 영국 경찰에 체포됐다.
그를 2009·2012년 인터뷰했다는 미 CNN 기자는 11일 "어산지가 너무 늙고 비참해 보여 충격받았다"며 "더 이상 예전의 샤프하고 자신만만한 운동가가 아니었다"고 했다. 어산지를 "섹시하다"며 후원해온 배우 패멀라 앤더슨(51)도 "변한 모습에 놀라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들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어산지가 2010년부터 미국 등 각국 기밀을 폭로해 세계 진보 진영에서 '진실을 추구하는 독립군 순교자'로 추앙하는 '어산지 신드롬'까지 낳은 데는 잘생긴 외모와 신비한 이미지도 한몫했다. 할리우드 영화사들은 당시 그를 팝스타 저스틴 비버에 비견하며 영화화하려 경쟁했다.
특히 여성 팬이 많았다. 그가 2012년 에콰도르 대사관에 피신하자 진보 패션디자이너 비비언 웨스트우드, 존 레넌 아내 오노 요코, 가수 레이디 가가와 앤더슨 등이 위로 방문을 했다. 어산지 성폭행 재판 때는 소녀 팬이 몰려들어 "어산지의 아이를 낳고 싶으니 풀어주라"고 시위했다. 애초 2010년 스웨덴 성폭행 사건도 그를 스톡홀름으로 초청한 여성단체 소속 팬 2명과의 관계에서 시작된 일이었다.
왜 이렇게 변했을까. 어산지가 에콰도르 대사관에 '셀프 감금'된 첫 몇 년만 해도 상태가 좋았다고 언론과 후원자들은 전한다. 팬들이 태양광 램프와 운동기구, 고양이, 컴퓨터와 침대 등을 들여보내줬다고 한다. 그러나 대사관 생활이 길어지며 햇볕과 신선한 공기를 거의 못 쐬면서 비타민 D 부족과 수면 장애, 각종 치과·관절 질환에 시달렸다고 한다. 또 기름진 배달 음식만 시켜 먹으면서 고른 영양 섭취도 불가능했다.
어산지의 심리적 불안도 급증했다고 뉴욕타임스 등은 전했다. 첫 2~3년은 방문객이 줄을 이었지만 점차 대중의 관심이 식었다. 위키리크스가 2016년 러시아의 미 대선 개입에 연루되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캠프 인사들과 접촉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진보 인사들이 일제히 등을 돌렸다. 위키리크스 자료를 받아 전속 보도했던 영국 가디언과도 계약 위반으로 인한 분쟁 끝에 절연했다. 어산지 자서전을 대필했던 작가에 따르면 대사관 속 그의 하루 일과는 끊임없이 구글에서 자신의 이름을 검색하는 것이었다. 과거 인터뷰에서 "자폐와 나르시시즘 기질이 좀 있다"고 한 그는 고립이 장기화되자 '누군가 날 죽일 것 같다'는 편집증과 우울증 증세가 심해진 것으로 전해졌다.
11일 에콰도르 정부가 전한 어산지의 기행도 충격적이다. 그는 좁은 대사관 복도에서 축구공을 차거나 스쿠터를 타고, 대사관 소유 CCTV 등 기물을 파손하고 자체 통신 설비를 세웠으며, 대사관 밖 영국 경찰들을 약 올리려 한밤중에 음악을 크게 틀거나 여자들을 불러 동침했다고 한다. 이를 제지하는 대사관 직원들에게 폭력을 휘두르고선 '내 인권을 무시한다'며 신세를 지고 있는 에콰도르 정부의 기밀문서를 폭로했다. 심지어 "대사관 측이 에콰도르 내정 개입을 문제 삼아 인터넷 접근을 막자, 어산지가 대사관 벽에 똥칠했다"는 말도 나왔다. 에콰도르 대사관은 최근 1년여간 어산지와 소송을 벌이다 결국 추방하면서 "7년간 어산지 수용에 600만달러(약 68억원)가 들었다"고 밝혔다.
어산지에 대한 법적 분쟁이 재개되면서 '국가의 이름으로 저지른 악행을 고발한 공익 제보자냐, 불법 해킹과 성폭행으로 점철된 파렴치범이냐'를 놓고 논란도 다시 가열되고 있다. 미국은 어산지를 2010년 미 정보요원과 함께 국방부 전산망에서 기밀자료를 빼낸 혐의로 기소한 상태로,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도 "누구도 법 위에 있을 수 없다"며 강경한 입장이다. 워싱턴포스트는 11일 사설에서 "미 대선에 개입하려는 러시아를 도와주고 성폭행을 저지른 범죄자"라며 "훔친 문서를 무차별 공개한 것은 공익 보도로 볼 수도 없다"고 했다.
그러나 '알 권리'를 위해 어산지 사법 처리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국경없는기자회는 "반체제 언론이나 내부 고발자를 보호하지 않는 위험한 선례를 남길 수 있다"고 했다. 미국 국가안보국의 통화 감찰 기록을 공개한 뒤 러시아에 망명한 전직 정보요원 에드워드 스노든은 "자유에 어두운 순간이 왔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