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6~7일) 강원 속초시 숙박 시설 방 10개 중 8개에는 손님이 없었다. 속초시번영회가 집계한 결과다. 속초시 노학동에서 콘도를 운영하는 주영래(60)씨는 "토요일의 경우 500객실이 모두 예약돼 있었는데 노쇼(no show)까지 포함해 총 430개 객실 예약이 취소됐다"고 했다. 주씨는 "30년 동안 이쪽 업계에서 일하며 메르스 사태 등 여러 고비를 겪었지만 이 정도로 힘든 적은 처음"이라고 했다.

한산한 속초 중앙시장 - 8일 오후 유명한 맛집이 몰려 있어 관광객으로 붐비던 속초중앙시장이 오가는 사람 없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 4일 대형 산불 이후 강원도 명소에 발길이 끊겨 상인들이 2차 피해를 입고 있다.

설악산국립공원은 지난 주말 입장객이 전주 대비 1700여명 줄었다. 등산객과 상춘객(賞春客)들로 붐볐던 예년과 달랐다. 국립공원공단 관계자는 "설악산에는 산불이 안 났는데도 많은 분이 피해를 본 것으로 오해한 것 같다"고 했다.

지난 4일 일어난 강원 산불은 서울 여의도 두 배(560㏊) 면적의 산림과 500채 가까운 주택을 태웠다. 불은 잡혔다. 하지만 산불 소식에 관광객들이 외면하면서 지역 경제가 흔들리는 '2차 피해'를 입고 있다.

이번 산불 피해를 본 강원 고성·속초·강릉·동해는 동해를 낀 대표적 관광지다. 매년 이맘때면 강릉과 속초는 벚꽃을 보러온 관광객으로 붐볐다. 올해도 강릉 저동 경포호에서는 지난 2일부터 7일까지 경포벚꽃잔치가 열렸다. 지난해 15만명이 찾은 지역 대표 축제다. 매년 경포호 주변 축제장은 발 디딜 틈 없이 사람이 몰렸다.

하지만 지난 주말 축제장은 텅 비었다. 개막 사흘 만인 지난 4일 강릉 옥계면에서 산불이 나면서 관광객들이 찾지 않은 것이다. 김세용 강릉시 공보계장은 "다행히 주초에 관광객이 찾긴 했으나 산불 영향 때문인지 주말이 썰렁해 최종 관광객은 지난해의 절반 정도밖에 안 되는 것 같다"고 했다. 속초 동명항, 장사항 등 관광객이 몰렸던 항구도 횟집마다 "산불 때문에 무서워서 못 가겠다"는 예약 취소 전화를 받았다.

지역 경제가 얼어붙으며 절박해진 속초시·고성군 주민들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동해안을 찾아 달라 호소하는 글을 올리는 캠페인을 벌이는 중이다. 8일 인터넷에서는 한 속초 주민이 페이스북에 쓴 글이 화제가 됐다. '산불로 모든 것이 부족한 실정입니다. 그중 가장 부족한 것이 관광객입니다. 많이 놀러 와 주시는 게 도움입니다.'

강원도는 여행사에 도지사 명의로 '강원도 여행은 안전하다'는 취지의 공문을 보냈다. 전국 시도 교육청에도 '수학여행을 취소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 이번 산불로 이재민이 발생했지만, 설악산을 비롯해 주요 관광지는 화마를 피했다. 고성군 화진포와 송지호 등 지역 대표 관광지도 피해를 입지 않았다. 고성군 관광문화과 관계자는 "오는 27일 개방하는 DMZ(비무장지대) 둘레길은 화재 지역에서 40㎞ 떨어져 있다"며 "많이 찾아주시면 지역 경제를 다시 세우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속초시 청초호·영랑호도 화재 전 그대로다. 강릉·동해에서는 고속도로 휴게소 2곳이 피해를 봤지만 정동 심곡 바다부채길, 헌화로, 추암해변 등을 관광하는 데 지장이 없다.

네티즌들도 '이번 주말 여행은 강원도·동해로 가자'는 글을 올리고 있다. 동해안 여행 인증샷을 올리거나, 취소하지 않은 숙박업소 예약 사진을 올리기도 한다. 서울 서초구에 사는 김수영(35)씨는 지난 7일 아내와 함께 강원 동해안 여행을 다녀왔다. 오전에는 산불 피해를 본 강원 고성군 토성면사무소에 들러 구호 물품을 전달하고, 오후에 속초 중앙시장·설악산·대포항 등을 찾았다. 김씨는 "가는 곳마다 상인분들이 한숨을 내쉬며 '죽은 도시가 되지 않게 널리 홍보해 달라'고 하시더라"며 "줄 서서 먹어야 했던 한 유명 닭강정 가게에 들렀는데 손님이 한 명도 없었다"고 했다. 대구에 사는 김초아(26)씨는 "다음 주 친구들과 가기로 한 속초시 대포동 펜션 예약을 취소하려다 소셜미디어에서 '속초를 치유해 달라'는 캠페인 글을 보고 예정대로 여행하기로 결심했다"며 "예약을 취소하는 것은 주민들에게 두 번 상처를 주는 일 같았다"고 했다.

강릉 시민 최민국(56)씨는 "2000년 동해안 산불, 2002년 태풍 루사 등 이보다 더 큰 재난도 이겨냈다"면서 "국민이 이번 봄에 강원도를 찾아주시면 아픔을 이기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원도는 한국관광공사와 공동으로 속초·고성·강릉·동해를 중심으로 한 할인 행사를 운영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