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와 실러가 사랑한 문예 도시에 네모반듯 주사위를 닮은 건물이 들어섰다. 독일 동부 튀링겐주(州)의 소도시 바이마르. 100년 전 건축·디자인 전문학교 '국립 바우하우스'가 개교한 이 도시에서 '바우하우스 박물관 바이마르'가 문을 열었다. 공식 개관을 이틀 앞둔 지난 4일(현지 시각) 프리뷰가 열렸고, 7일까지 축하 콘서트와 퍼포먼스가 이어졌다. 인구 6만5000명의 작은 도시가 들썩였다.

◇바이마르는 바우하우스의 요람

바이마르 할렌공원 인근에 자리 잡은 새 박물관은 독일 건축가 하이케 하나다가 설계했다. 독일 연방정부와 튀링겐주 의뢰를 받아 '바이마르 고전주의재단'이 실시한 국제 공모전 당선작이다. 간결한 연회색 콘크리트 건물은 실용을 강조한 바우하우스 정신을 반영했다. 밤이 되자 외벽을 둘러싼 24개 LED 스트립 조명이 발광해 각진 큐브(입방체) 모양이 도드라졌다. 전시 면적 2250㎡(약 680평). 전체 5층 구조로 1층과 2층은 통층으로 뚫렸다. 헬무트 제에만 재단 회장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바우하우스 컬렉션의 전모를 드디어 한 공간에서 펼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개관전(展) 제목은 '바우하우스, 바이마르에서 오다'. 모더니즘 건축, 산업디자인 탄생지로서의 자부심을 야심 차게 드러냈다. 초대 교장 발터 그로피우스(1883~1969)가 1920년대에 직접 고른 컬렉션을 기초로 최근까지 1만3000여 점을 모았다. 그중 1000여 점을 엄선해 바우하우스의 태동과 역사, 발전 과정을 1~3층에 나눠 선보인다.

◇칸딘스키·클레… 쟁쟁한 스타 군단

공중에 매달린 대형 설치 작품으로 전시의 문이 열린다. '미래의 새로운 구조를 함께 열망하고 인식하고 창조하자.' 빛의 덩어리 같은 활자가 관람객 머리 위에서 명멸하며 떠다닌다. 1919년 4월 교장직을 수락하며 발터 그로피우스가 발표한 바우하우스 선언문이다.

①관람객들이 벽을 장식한 회화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②아르헨티나 출신 작가 토마스 사라체노의 설치 작품이 로비 입구에 매달려 있다. ③오스카 슐레머가 1923년 연출한 ‘3인조 발레’를 현대적으로 재현한 비디오 영상. ④밤이 되자 박물관 외벽을 둘러싼 LED 조명이 발광해 각진 큐브 형태가 도드라졌다. ⑤칸딘스키의 색채·형태 이론을 활용해 만든 ‘바우하우스 요람’(1922).

바우하우스를 거쳐 간 굵직한 인물들도 작품과 함께 소개한다. 추상미술의 아버지 바실리 칸딘스키, 미술과 음악을 결합한 파울 클레, 전위적 무대미술가 오스카 슐레머…. 쟁쟁한 이 스타 군단이 바우하우스의 선생(마스터)들이었다.

학생들은 공방과 워크숍에서 실무와 이론을 함께 익혔다. 색의 삼원색과 기본 형태(삼각형·사각형·원)로 설계된 요람, 직선과 곡선만으로 구성된 서체, 뚜껑과 손잡이가 달린 금속 주전자 등 바우하우스 대표작들이 모두 나왔다. '놀이가 일이 되고, 일이 파티가 되고, 파티가 놀이가 된다'는 교육철학처럼 바우하우스의 실험은 단지 학습이 아니었다. 마스터들은 회화·그래픽·섬유·사진 등 자신들의 독자적인 분야에서뿐 아니라 무대 위에서 인간과 공간, 기계의 융합을 시도했다. 이 실험의 중심이 바로 '무대'였다. 바우하우스인들이 무대에서 펼친 퍼포먼스와 발레, 무용 등이 전시장 화면을 통해 펼쳐진다.

◇바우하우스 첫 건축물은 세계유산

박물관 말고도 바이마르엔 바우하우스의 유산이 곳곳에 남아 있다. 박물관에서 차를 타고 남쪽으로 10여 분 이동하면 바우하우스의 첫 건축 프로젝트인 '하우스 암 호른(Haus am Horn)'이 나온다. 1923년 바우하우스가 개최한 첫 전시회에서 공개됐다. 바우하우스 공방에서 제작한 혁신적 가구와 소품까지 모아놓은 전시장 겸 모델하우스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오는 5월 18일 재개관한다. 바이마르 고전주의재단은 "주부들이 최소한의 작업으로 생활할 수 있게 구현된 실용적 주거 공간을 당시 그대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로피우스 교장실은 바우하우스의 압축판]

발터 그로피우스가 1919년 설립한 바우하우스는 오늘날 '바이마르 바우하우스대학교'로 그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대학교 안에도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있다. 바우하우스 전신인 옛 미술공예학교와 미술아카데미 건물 두 곳이다. 그로피우스 교장실〈사진〉은 이 학교 투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장소. 1923년 바우하우스의 첫 전시회를 앞두고 그가 꾸민 공간 배치와 가구를 그대로 복원했다. 레몬색 소파는 그로피우스가 디자인한 'F51 암체어'. 팔걸이가 좌석 위에 떠있는 듯 보인다. 카펫, 책상 위 램프 모두 바우하우스 워크숍에서 탄생한 작품들이다.

바우하우스의 조형 마스터였던 오스카 슐레머가 인체를 형상화해 그린 벽화 작품도 2000년대 들어 복원했다. 슐레머는 "인간은 시각적 세계에서 가장 고귀한 주제"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