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직장인인 우리 부부에게 결혼한 지 5년 만에 기대하지 못한 복권 당첨 소식처럼 귀한 아이가 찾아들었다. 황금돼지 해에 태어나 기쁨이 더 컸다.

하지만 난산이었다. 출산 예정일은 2월 중순인데 보름이나 일찍 산고가 시작됐다. 여태껏 초음파로 확인할 땐 안 그랬는데, 막상 낳으려 하니 채한이가 하늘을 보고 누워 있어 아내의 산통이 길어졌다. 의사 선생님이 자연분만을 계속 시도할지, 제왕절개를 할지 물었다. 이제껏 내가 받은 그 어떤 질문보다 답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다행히 제왕절개까지 가지 않고 자연분만으로 채한이가 태어났다. 엄마 골반에 걸려서 막 태어났을 때 머리 모양이 삼각김밥 같았는데도 웃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간호사가 아이를 안아 내게 보여주던 첫 순간, 뭐라고 간단히 말할 수 없는 감정이 밀려왔다. 아이가 너무나 작고 사랑스러웠다.

축하 전화가 쏟아졌다. 와중에도 아내는 예상치 못한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모유 수유가 이렇게 힘든 일인 줄 몰랐다. 주변 사람들이 "임신 막판에 힘든 거에 비하면 조리원 생활은 천국"이라고 안심시켜줬지만, 아내의 조리원 생활은 그런 기대를 배신했다. 채한이는 엄마 젖이 부족해 앙앙 울었다. 아내는 가슴이 퍼렇게 멍들도록 유축을 했는데도 젖이 많이 안 나왔다. 아내가 깔끄러운 입에 미역국과 두유, 모유 촉진 차를 욱여넣으며 "모유 수유가 가장 큰 선물이라던데…" 하고 울먹였다. 달래면서 나도 마음 아팠다. 나는 모유든 분유든 상관없다고 생각하는데, 엄마 마음은 다른 것 같았다.

채한이가 태어난 지 50일 되던 날, 아빠 송석훈(39)씨와 엄마 류민정(32)씨가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송씨는 “채한이가 자유의 소중함을 알고, 공정과 공평이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는 옳은 아이로 자랐으면 한다”고 했다.

2시간 간격으로 유축을 하고 모유에 대해 인터넷 검색을 하느라 아내는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 것 같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조리원에서 매일 아침 신생아실 유리 너머로 아이를 보며 흐느끼는 산모가 하나 있었다고 했다. 아내였다. 조리원에서 지낸 2주 동안 아내는 항상 눈이 부어 있었다.

걱정 속에서 퇴원해서 세 식구가 집에 왔다. 초보 부모가 서툴러 아이가 곧잘 울음을 터트렸다. 우는 채한이를 안고 달래며 나는 이렇게 속삭였다. "나도 부모가 처음이라 서툴지만 점점 잘할게, 아가야."그건 스스로에게 거는 주문과 같았다. 인터넷은 선생님이었고, 육아용품은 도우미였다. 일상은 점점 부족한 잠 속에 몽롱해졌지만 훌륭한 선생님과 친절한 도우미 덕에 지금은 채한이를 보는 데 능숙해지고 있다. 오늘보다는 내일. 내일보다는 또 그다음 날 더 잘해낼 수 있다는 기대로 하루하루 바쁘게 굴러가고 있다.

가보지 않은 길이 두려운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도 최고의 부모가 되고 싶은 마음에 자꾸 두려워지고, 그런 두려움이 종종 죄책감으로 변해버린다. 죄책감은 곧 우울증으로 이어지기 쉽다고 들었다. 내 죄책감을 털어내게 한 문장은 이것이었다. "부모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

그 뒤 나는 아이에게 미안해하기보다, 서툰 실력을 극복하는 데 애썼다. 매일매일 더 치열하게 아이 돌보는 법을 배웠다. 벌써 아이는 50일을 지나 100일의 기적을 향해 가고 있다. 이제 채한이를 보면 눈물이 아닌 웃음이 난다. 울어도 예쁘고, 웃으면 더 예쁘다. 휴대전화가 채한이 사진으로 가득 차 간다. 아이용품 브랜드를 줄줄 욀 정도가 됐다. 우린 그렇게 최고의 부모보단 행복한 부모가 되어 가는 중이다. 그리고 이젠 두려움 없이, 내일을 고대하며 잠든다. 오늘보다 더 커 있을 아이를 기대하면서.

내가 가장 존경하는 분이 아버지다. 아버지는 평생 공직에 계시다 은퇴하셨다. 권력자도 갑부도 아니지만 평생 꼿꼿하고 깨끗하게 원칙대로 살아가려 노력하셨다. 아버지는 늘 세 가지 얘기를 입버릇처럼 하셨다. "남에게 절대 피해 주는 행동을 해선 안 된다." "바른길이 아니면 가지도 말고 쳐다보지도 말거라."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받으면 꼭 고맙다고 인사를 하거라." 어릴 땐 그 말씀이 따분하고 지겨웠다. 하지만 내가 부모가 되고 보니, 우리 채한이가 아버지께서 내게 하신 말씀대로만 자라줬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나를 있게 해준, 나를 이만큼 살게 해준, 그리고 나를 지켜준 분을 향해 존경하는 마음을 갖는 사람으로 자라주길 기도한다.

나는 아직 마흔도 안 된 젊은 사람이지만, 자유가 얼마나 소중하고 체제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자주 생각한다. 자유가 공기처럼 당연한 것처럼 되어 버렸는데, 내 아이는 대한민국에서 누리는 자유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으로 자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