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한 살의 르네 마그리트(1898~1967)가 혼자 포토 부스(Photo Booth)에 들어가 앉는다. 정면을 바라보더니 이윽고 눈을 감는다. 팡! 플래시가 터진다. 눈 감은 셀피(selfie)가 인화된다.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적힌 파이프 그림 '이미지의 배반'으로 유명한 이 벨기에 초현실주의 화가가 남긴 원본 사진 130점을 선보이는 국내 첫 전시가 경기도 용인 뮤지엄그라운드에서 7월 10일까지 열린다. 호주·홍콩·대만에 이어 세계 네 번째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자비에 카노네 벨기에 샤를루아사진미술관장은 "신문물에 호기심 많던 그가 사진을 통해 어떤 예술적 영향을 받았는지 초점을 맞췄다"며 "그의 작품엔 눈 감고 있는 인물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는 인간의 100% 온전한 재현이 불가능하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지난달 29일 그의 그림 '세이렌의 노래'가 아시아 지역 최초로 홍콩 경매에 나와 약 72억4000만원에 낙찰되는 등 화가로서 이름값이 높으나 사진가로도 조명된 건 최근의 일이다. 카노네 관장은 "아틀리에 없이 집 거실에서 그렸던 마그리트는 사진 역시 일종의 놀이처럼 대했다"면서 "특히 화가로서의 자신을 자주 촬영했다"고 했다. 실제 본인의 그림과 똑같이 연출된 사진도 여럿 찍었는데, 그림 '통찰력'(1936)을 이젤에 올려놓고 그림 속 화가(본인)와 똑같이 포즈 잡고 찍은 사진이 대표적이다.
아내 로제트는 영원한 뮤즈였다. 아내와 아내 바로 뒤에 선 자신의 모습을 함께 촬영한 '그림자와 그 그림자', 흰 천으로 두 사람의 온몸을 돌돌 감은 채 찍은 '꽃다발' 등에선 유쾌한 부부애가 느껴진다. 익숙한 사물을 낯설게 배치하는 데페이즈망(Depaysement) 기법을 즐긴 화가답게 누운 아내의 머리 위에 생뚱맞게 파이프를 놓고 찍은 사진도 있다. 제목이 '망각 판매자'다.
직접 찍은 영화 2점(1942·1955)도 전시된다. 스타킹에 구두까지 신은 채 대얏물에 발을 씻는 여자, 얼굴에 흰 천을 두른 채 키스하는 남녀 등이 일관된 서사 없이 흘러나온다. "늘 새로움에 열광했던 예술가의 내면을 들여다볼 기회"란 설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