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에 신(神)들만 사는 올림포스산이 있다면 한국엔 바둑의 신들만 오르는 '맥심산'이 있다. 기원전 6세기 신화가 토대인 올림포스에 20년 역사의 맥심배를 어찌 견줄 수 있으랴. 하지만 입신(入神) 기사 32명 각축장인 맥심배 보는 재미는 12신 올림포스 고전 읽기 못지않다.

실적과 단위를 연동하면서부터 9단은 명실공히 최고 기사들의 상징으로 바뀌었다. 입신 계급장을 단 81명 중에서 다시 추려 맥심배 본선에 초대된 숫자는 32명. 3월 한국 랭킹 1~15위 가운데 딱 1명(군 복무 중인 11위 안성준 8단)만 빠졌을 만큼 고수들이 총집결했다. 단위 조항 때문에 제한 기전 딱지가 붙었지만 난도(難度)로는 국내 최고 기전이다.

9단들만 출전할 수 있는 맥심배 입신최강전 올해 패권은 국내 랭킹 2위 신진서(왼쪽)와 4위 이동훈(오른쪽) 간의 3번기로 판가름 나게 됐다.

피라미드 허물기식 토너먼트로 반감(半減)을 거듭한 끝에 랭킹 2위 신진서(19)와 4위 이동훈(21) 2명의 결승전만 남았다. 영파워 군단 멤버끼리의 격돌이다. 하지만 라이벌전이라고 하기엔 지금까지 쌓인 전적이 너무 일방적이다. 둘은 2016년 이후 8번을 겨뤄 신진서가 8판 모두 불계로 이겼다.

하긴 이동훈만 당해온 것도 아니다. 신진서는 입단 동기 신민준(20)을 13승 3패, 변상일(22)은 11승 2패란 압도적 성적으로 몰아붙이고 있다. 그래서 이번 결승은 신진서 대 이동훈이라기보다, 스무 살 안팎 유망주 그룹이 신진서의 아성을 깰 가능성이 어느 정도인지를 점검하는 기회가 될 전망이다.

이동훈으로선 우선 연패 사슬을 끊고 첫 승을 올리는 것이 긴요하다. 그는 결승에 먼저 오른 후 "진서가 올라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바둑계는 이 말을 어차피 신진서를 넘지 못한다면 미래가 없다고 판단한 이동훈이 정면 돌파 의지를 밝힌 것으로 분석한다.

신진서로서도 뒤를 돌아볼 틈이 없다. 최근 몇 달 새 세계 제패 기회를 2번 연속 놓친 데다 난적 박정환에겐 4승 11패로 뒤져 있다. 여기서 추격 그룹에 발목이 잡힌다면 또 얼마를 돌아가야 할지 모른다. 아무튼 "동훈 형과의 대국은 매번 쉽지 않았다"는 겸손한 출사표에도 불구하고 결승을 앞둔 신진서에게서 긴장감은 느껴지지 않는다.

맥심배 최다 우승자는 이세돌(5회)이고 최철한 박정환(이상 각 3회)이 뒤쫓고 있다. 맥심배는 부부 동반 제패(장주주 2002년·루이나이웨이 2004년), 부부 동반 결승전(장주주-루이나이웨이·2002년)이란 진기록이 나온 세계 유일 대회다. 한국 바둑의 진짜 신화 이창호가 우승 못 한 몇 안 되는 무대이기도 하다.

신진서가 이기면 맥심배 사상 최연소, 이동훈이 승리하면 2위 우승자가 된다. 둘의 만남만으로 이미 역대 최연소 결승 기록이 수립됐다. 우승 상금 5000만원이 걸린 결승 3번기는 8일 1국, 22일 2국(강원도 양양)으로 이어진다. 올해 맥심산을 주재할 젊은 '제우스'는 두 명 중 누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