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31일 조동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지명을 철회했다. 최정호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도 자진 사퇴 형식을 취했지만 사실상 지명 철회란 평가가 많다. 문 대통령이 지난 8일 단행한 2기 개각 인사 7명 중 2명을 스스로 포기한 셈이어서 인사 참사란 지적과 함께 검증 실패 책임론이 거세게 일고 있다. 하지만 청와대는 이날 "조 후보자가 (문제가 된) 해외 부실 학회 참석 사실을 밝히지 않아 검증에서 걸러낼 수 없었다"고 했다. 조국 민정수석 등 청와대 인사 검증 라인에 대한 문책 가능성에 일단 선을 그은 것이다.

靑수석·보좌관 회의 참석한 조국(왼쪽) 민정수석과 조현옥 인사수석.

문 대통령의 고위 공직자 인사를 보좌하는 두 축은 조현옥 인사수석과 조국 민정수석이다. 통상 고위공직자 인사는 청와대 인사수석이 정부 인사 존안자료나 각계 인사추천을 바탕으로 후보자를 발굴하면, 민정수석이 검증을 통해 적격 여부를 걸러낸다. 이 때문에 두 사람 다 인사 실패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야당에서 이날 일제히 두 사람의 경질을 요구하고 나온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조국⋅조현옥 두 사람은 현 정권 출범 이후 여러 차례 있었던 인사 실패 논란 때마다 야당의 책임 공세에 시달렸지만 지금까지 보직을 유지해왔다. 조국 수석의 경우 김태우 전 특감반원 폭로로 민정수석실의 민간 사찰 의혹까지 제기됐지만 현 정부가 추진하는 이른바 ‘사법개혁’ 작업의 상징이란 논리로 자리를 지켜왔다. 조현옥 수석도 이른바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 사건이 불거졌지만 청와대 내부에서 경질론을 거론하는 사람은 없었다.

문제는 두 사람이 정작 ‘본업(本業)’인 인사 검증에서 실패를 되풀이하고 있다는 점이다.  작년 4월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이 외유성 출장 문제 등이 논란이 돼 물러났을 때도 조국 수석 문책론이 불거졌다. 김 전 원장 외에 문재인 정부 출범 후 물러난 차관급 이상 인사는 안경환 법무부 장관 후보자, 조대엽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 박기영 과학기술혁신본부장 등 7명 이상에 달한다. 모두 민정수석이 검증을 담당했던 사람들이다.

그때마다 조 수석은 "검증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니다" "검증 목록에 없던 새로운 사안이 불거졌다"는 식으로 위기를 모면해왔다. 이번에도 청와대가 내놓은 반응은 비슷하다. 윤도한 국민소통수석은 이날 조 후보자 지명 철회 브리핑에서 '송구하다고 하고 끝날 게 아니다. 청와대 안에서 책임지겠다는 사람은 없는가'라는 질문을 받자 "그런 논의를 따로 한 적 없다"고 했다.

오히려 윤 수석은 이날 "조 후보자가 (청와대 인사 검증 때) 해외 부실 학회에 다녀온 사실을 밝히지 않아 검증에서 걸러낼 수 없었다. 사전에 확인됐다면 후보 대상에서 제외됐을 것"이라고 했다. 윤 수석은 그러면서 "청와대 인사 검증은 공적 기록과 세평을 중심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일정 부분 한계가 있다. 인사청문회와 언론의 취재는 검증의 완결로 볼 수 있다"고도 했다. 사전에 몰랐던 것은 후보자가 밝히지 않은 탓이고, 사후에 언론 취재를 통해 흠결이 드러났으니 검증이 완결된 것 아니냐는 취지로 들린다.

이에 대해 야당은 "인사 참사에 대한 책임 회피성 궤변”이라고 하고 있다. 한국당 관계자는 "민정수석이 후보자의 자백과 공적 기록, 세평만 갖고 검증한다면 뭣하러 그 자리에 있느냐"고 했다. 정부가 갖고 있는 인사 존안 자료와 경찰 등의 검증 수단을 갖고 있는 청와대가 언론이 밝혀낸 문제도 모른다는 게 말이 되느냐는 것이다. 바른미래당 하태경 의원은 “조국 수석은 문 정권 인사 망사(亡事)의 원흉”이라며 “낙마 1순위는 조 수석”이라고 했다.

더구나 국회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7명의 장관 후보자의 각종 흠결이 제기되자 청와대 대변인은 “사전에 다 알고 지명한 것”이라고 했다. “별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냐”고 되묻자 “청문회에서 가려질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를 두고 야당에선 “청와대가 7명 임명을 강행하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다 그 대변인이 부동산 투기 논란에 휘말려 낙마하면서 여론이 악화하자 조동호⋅최정호 후보자를 포기하는 선에서 사태를 수습하려는 것 아니냐는 말들이 야당에서 나온다.

낙마한 조⋅ 최 후보자 외에 남은 5명의 장관 후보자 인사 검증 과정도 논란거리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 후보자는 천안함 폭침 사건을 '우발적 사건',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건을 '통과의례'라고 각각 표현하고 과거 소셜미디어에 쓴 부적절한 표현 때문에 인성(人性) 시비까지 불거졌다. 부동산 다운계약서 작성과 차명 분양권 전매 논란도 있다.

문성혁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는 아들의 한국선급 특혜채용과 건강보험료 납부 회피, 군 복무 중 석사 학위 취득, 위장전입 등에 대한 논란이 제기됐다.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후보자에 대해선 소득·증여세 지각 납부, 박사논문 표절 및 위장전입 논란이 제기됐으나 말끔하게 의혹이 해소되지 않았다.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후보자는 정치자금 영수증을 허위로 제출하고 부적절하게 사용했다는 의혹에 휘말렸다. 진영 행정안전부 후보자도 지역구 내 재개발 부동산 매매로 시세차익을 올린 사실이 드러났다.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이 26억원 상당의 재개발 지역 상가 주택 건물을  구입해 낙마한 문제에서도 조국 수석이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7월 매매 이후 올해 3월 공직자 재산공개까지 충분한 시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청와대 내부기강을 담당하는 민정라인은 김 전 대변인 같은 주요 참모의 재산 상황을 확인하거나 부적절한 투자를 제어하지 못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여권에선 두 조 수석이 이번에도 자리를 지킬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많다. 무엇보다 두 사람에 대한 문 대통령의 신임이 두텁다는 점이 그 근거로 꼽힌다. 한 여권 관계자는 “그가 현 정권 창출에 지분이 있는 참여연대 출신인데다, 현 정권의 정치적 기반인 PK(부산⋅경남) 출신이란 점도 무시하기 어렵다”고 했다.

야당에선 “문 대통령과 조 수석이 순망치한(脣亡齒寒·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의 관계가 돼 경질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한 야당 핵심 관계자는 “조국 수석은 야당의 각종 게이트성 의혹 제기의 타깃이 돼 있어 그가 야당의 공세에 밀려서 물러날 경우 공세의 화살이 곧바로 문 대통령을 겨냥할 수 있다는 점이 권력 핵심부로선 고민일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