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갑한 것도, 재미없는 것도 못 참아요.” 평범한 법조인을 거부하고 스타트업 ‘화난 사람들’을 만든 최초롱 변호사. 그는 ‘법’과 ‘재미’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게 목표라고 했다.

변호사 최초롱(32)씨는 지난해 5월 서울 용산 원효전자상가에 둥지 틀었다. 연수원 동기들은 대부분 서초동 법조타운에 자리 잡았는데 별똥별처럼 가전 부품상이 오밀조밀 모여 있는 전자상가로 혼자 뚝 떨어졌다. 법률사무소를 연 게 아니다. 스타트업을 차려 불이익 당한 사람들이 집단으로 권리 찾도록 돕는 '온라인 집단분쟁 플랫폼'을 만들었다.

이름부터 코믹하다. '화난 사람들.' 한자나 영어, 변호사 이름 석 자를 내세우는 법조계 일반 작명법을 깬다. 인터넷 사이트엔 각종 분노가 등장한다. 불붙은 분노, 예열 중인 분노, 나의 분노 너의 분노….

이름으로는 온몸으로 화를 뿜어내는 듯하지만 그렇다고 빨간 띠 두르고 투쟁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그의 또래인 밀레니얼 세대에 인기 있는 글꼴과 이미지로 만든 사이트에서 각종 이슈를 쉬운 말로 법률적으로 설명한다. 예컨대 '정준영 단톡방 사건'의 경우 내용을 짧게 요약하고, 어떤 죄가 성립되는지 알려준 다음, 비슷한 선례를 알려주는 식. 카드 뉴스까지 등장해 얼핏 뉴스 포털 같기도 하다.

10개월도 안 됐는데 대진침대 라돈 검출 사건(5886명 참여), BMW 집단소송(2500여명) 등 굵직한 집단소송이 이곳을 통해 이뤄졌다. 외부 변호사가 '화난 사람들'의 플랫폼을 이용해 소송할 사람들을 모으는 방식이었다.

"창(窓)이 있으면서 싼 사무실을 찾다 보니 여기까지 왔어요." 지난 25일 원효전자상가 내 창업지원센터에 있는 '화난 사람들' 사무실에서 만난 최씨가 웃으며 말했다. 보증금 135만원, 월세 10만원인 4평짜리 사무실은 그와 디자이너, 프로그래머 세 명만으로도 꽉 찼다.

딱딱한 법, B급 감성으로 풀다

젊은 감성으로 만든 ‘화난 사람들’홈페이지. 언뜻 뉴스 포털처럼 보인다.

―이름만 보고 화풀이하는 커뮤니티인 줄 알았어요.

"화풀이하는 곳 맞습니다(웃음). 단, 적절한 법적 수단을 통해 권리 구제를 해서 제대로 화풀이하자는 거죠."

―어떻게 '화'를 테마로 법률 플랫폼을 만들 생각을 했나요.

"예전부터 화장품, 패션 인터넷 커뮤니티 활동을 많이 했는데 인터넷에서 사람들을 보면 늘 화를 내고 있어요. 법조인의 눈으로 보니 분노를 그냥 싸지르고 마는 게 안타까웠어요. 그래서 법을 이용해 적절한 방법으로 의미 있게 화를 해소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었습니다."

―법률 사이트 같지 않게 말랑말랑합니다.

"사람들과 법 사이의 심리적 거리를 줄이는 게 목표였어요. 요즘은 변호사가 너무 많아 '손님 고픈' 변호사가 많아요. 손님은 제대로 화 푸는 방법이 고프고요. 그런데 일반인들에게 법대(法臺·판사가 앉는 자리)는 저 멀리 있고, 법복(法服)은 무섭고, 법조문은 어려워서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어요. 인식을 바꾸려면 기존 틀로는 어렵다고 봤어요."

―그래서 어떤 틀을 썼는지요.

"'B급 감성의 법률 포털'을 내세웠어요. 유머가 있으면서 약간은 어설픈 'B급 코드'로 네이밍과 디자인을 해서 법의 근엄함을 깨기로 했어요."

변호사가 집단소송에 참여할 사람들을 모으는 코너 이름은 '불붙은 분노', 집단 분쟁이 될 만한 이슈를 소개하는 코너 이름은 '예열 중인 분노'다. "외식업을 하는 남편이 계속 '어려운 변호사 말로 쓰지 마라'고 해요. 내용이 어려우면 다른 요소라도 넣어 눈길 가게 하자 싶어 텍스트에 빨간 밑줄도 긋고, 글씨체도 달리 해봤고요."

―'집단분쟁 플랫폼'이라는 게 좀 생소합니다.

"집단소송이 핵심이지만 모든 의미의 집단행동을 포함한다는 취지입니다. 집단분쟁 조정, 고소·고발인 모집, 신고인 모집 캠페인, 탄원인 모집 캠페인도 합니다."

카페에서 고시 공부한 별종

―변호사가 스타트업을 만들었습니다.

"원래 판사를 지망했어요. 과거엔 연수원 졸업하면 성적에 따라 바로 판사 임관을 했는데 우리 때 제도가 바뀌어 법원에서 재판연구원으로 2년 일하고 로펌 등에서 3년 더 법조 경험을 쌓은 뒤 판사에 지원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서울 고등법원에서 재판연구원으로 2년간 일했어요. 지난해 2월 연구원 임기가 끝나고 다른 동기들은 거의 로펌으로 갔는데 저는 아예 원서를 안 냈어요. 사업 구상을 하고 있었거든요."

―성적이 안 된 건 아니고요?

"쑥스럽지만 성적은 괜찮았어요(웃음). 2013년 사시 합격 때 전체 7등이었고, 연수원 졸업 성적도 상위 10% 안에 들었어요."

―도전 정신이 넘치는 편인가요.

"답답한 걸 못 참습니다. 대학(고려대 법대) 때 고시 공부 하면서 신림동 고시촌에 한 번도 안 갔어요. 독서실은 고등학교 때 딱 한 번 가서 잠만 자고 나온 뒤로 다시는 안 갔고요. 고시 공부를 카페에서 했어요. 냅킨에 낙서하면서. 매일 카페 세 군데를 돌아가면서 공부했는데 직원들이 알아보고는 나중엔 간식을 나눠줄 정도였습니다. 이런 스타일인데 법원에 들어가니 정말 갑갑했습니다."

―뭐가 그리 답답하던가요.

"경력 20~30년 되어도 연수원에서 몇 등 했는지가 중요하고, 승진 걱정을 해야 합니다. 그 안에 있으면 저도 저렇게 남의 이목을 신경 쓰고 살 것 같았습니다. 그보다는 좀 더 자유롭고 재미있는 일을 하고 싶어서 트랙에서 뛰쳐나왔어요. 정해진 트랙으로 들어섰다면 저 역시 남들보다 앞서고 싶어 1등 하려고 안간힘 썼을 겁니다."

화, 모으면 힘이 된다

―플랫폼은 어떻게 구상했나요.

"사업 구상을 함께하던 대학 선배(법무법인 창천 윤제선 대표변호사)가 숙박 예약 어플 '여기어때'의 개인 정보 유출 사건을 담당하고 있었어요. 집단소송이 변호사 입장에선 큰돈 되지 않으면서 단순 업무가 많아 달갑지 않다고 하더라고요."

―어떤 종류의 단순 업무를 말하나요.

"집단소송의 경우 많으면 수천 명 정보를 일일이 이메일로 받아 전산화합니다. 요즘처럼 모든 게 시스템화돼 있는 세상에서 구시대적인 방식으로 단순 노동을 하는 거예요. 소송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착수금을 무통장 입금으로 보내는데 입금자명을 제대로 안 적고 '변호사님 힘내세요' 식으로 보내기도 해요. 그러면 누가 보냈는지 확인이 안 돼 애먹죠. 그래서 법원에서 원하는 양식으로 데이터화해주는 집단소송 전산 프로그램을 만들었어요." 변호사가 회원으로 가입해 이용료를 내고 이 프로그램을 쓴다. '화난 사람들'의 주 수익 모델이다.

―요즘 젊은 변호사가 하는 스타트업이 종종 있습니다.

"변호사 수는 많아지고 시장은 좋지 않으니 경쟁이 치열해요. 새로운 돌파구로 리걸 테크(legal+tech·법과 IT를 결합한 법률 서비스)에 관심 가지는 젊은 변호사들이 있어요. '로톡' 같은 변호사 중계 서비스도 있고요."

―기존 변호사 중계 서비스와 다른 점이라면.

"기존 서비스가 변호사가 필요해서 찾는 이들을 위한 서비스라면 우리는 일반인이 오래 머물 수 있는 법률 플랫폼을 만드는 게 목표예요. 저희 부모님은 딸이 변호사인데도 법을 부담스러워하는데 일반 사람들은 오죽하겠어요. 우리 사이트는 변호사를 연결해주는 플랫폼 역할도 하지만 의사와 상담하면서 심리 치료 하듯 가벼운 마음으로 법을 상담하고 나누는 플랫폼 역할도 합니다."

―참여하는 변호사는 어떻게 모읍니까.

"보부상처럼 변호사들 찾아가서 같이 해보자고 앵벌이 합니다(웃음). 부티크 펌(특정 분야를 전문으로 하는 소규모 로펌)에 종사하는 젊은 변호사들 반응이 아무래도 좋습니다. 지금 20명 정도가 회원으로 가입해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집단행동으로 소송을 조장한다는 시선도 있습니다.

"부조리를 없애려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보죠. 한 홈쇼핑에서 김치냉장고를 팔면서 500만원대 백화점 최고급 모델을 300만원대에 판다고 했는데 알고 보니 다른 모델이었어요. 결국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과징금을 부과했는데 부당한 행위로 홈쇼핑이 얻은 이익에 비하면 너무 적은 액수였습니다. 자연히 기업 입장에선 과징금 조금 내고 허위 광고하는 걸 선택하겠죠. 집단적으로 목소리를 내 소송하면서 끈질기게 귀찮게 하면 이런 부당 행위들이 줄어들지 않을까요."

차분하던 목소리가 커졌다. "흩어지는 분노를 한데 모아 긍정적인 힘을 발휘하는 것, 그래서 화난 사람들이 줄어드는 게 '화난 사람들'의 지향점입니다." 빨간 명함에 쓰인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모이면 권력이다, 뭉치면 권력이다, 우리가 권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