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월 19일 전북 익산시 금마면 미륵사터에 전국의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미륵사지 석탑을 보수하기 위해 해체하던 중 백제시대 금·은·청동·유리제 유물 9947점이 쏟아져 나왔다. 압권은 "639년 백제 좌평 사택씨의 딸인 왕후가 발원해 창건했다"고 새긴 사리봉안기(舍利奉安記).
미륵사는 백제 무왕(서동)과 신라 선화공주의 러브 스토리가 남아 있는 절이다. 부부의 연을 맺은 무왕과 선화공주가 미륵삼존을 만났고, 왕비의 간청으로 절을 세웠다고 삼국유사에 전한다. 그런데 백제 귀족의 딸이 왕후라니! 선화공주는 허구의 인물이었나? 학계가 발칵 뒤집혔다. 다음 날 본지 1면에 실린 기사 제목은 이랬다. '선화공주의 로맨스, 역사의 미궁 속으로…'.
동아시아 최대 규모 석탑이라는 익산 미륵사지 석탑(국보 제11호)이 21년간의 보수를 끝내고 하늘 아래 우뚝 섰다. 원래 대형 목탑 양쪽에 동탑과 서탑이 있는 구조였으나, 목탑과 동탑은 사라지고 서탑은 6층까지만 일부분이 무너져 내린 상태로 남아 있었다. 1915년 일제는 붕괴된 곳에 콘크리트를 바르는 응급조치를 했지만 세월이 흐르며 악화돼 당장 해체 수리를 해야 한다는 결론이 났다. 185t 콘크리트를 정으로 하나하나 깨 걷어내는 데만 3년이 걸렸다.
추정에 의한 복원을 하지 않았다는 데 의미가 있다. 남아 있는 형태를 볼 때 9층이었을 가능성이 높아 '9층 복원안' '6층 완전 복원안'을 둘러싸고 논란이 있었으나 고증 자료가 없는 상황에서 무리하게 추론하지 않기로 결론을 냈다. 해체 직전의 6층 규모로, 비스듬한 경사면을 그대로 살렸다. 높이 14.5m, 폭 12.5m. 해체 전 석재 재사용률이 81%에 이른다.
최근 감사원은 탑 내부인 적심을 새 석재로 쌓기로 해놓고 기존 석재를 활용했다며 '원형'과 달라졌다고 지적했다. 탑의 원형은 누구도 알 수 없는데 무엇이 원형과 달라졌다는 걸까. 감사원은 보수 과정에서 예산과 절차가 제대로 집행됐는지를 따져야지, 원형 여부는 전문가가 판단할 영역이다. 문화재청은 "1~2층 내부를 새 석재로 쌓은 뒤 안정성이 갖춰졌다고 판단해 기존 적심석의 역사적 가치를 살리려 재활용했다"고 했다.
22일 오후, 석탑 주위를 천천히 돌며 올려다봤다. 각도에 따라 전혀 다른 얼굴이 드러났다. 긴 세월 비바람 맞아 퇴색한 옛 돌 사이로 21세기의 하얀 돌이 모자이크처럼 섞여 있다. 부서지고 무너진 상처 그대로 당당하다. 탑이 간직한 1400년의 역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