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진 부모 살해 피의자 김다운 신상공개
얼굴 옷 속으로 감춰 사실상 '공개' 의미없어
미국, 캐나다, 일본은 경찰이 '머그샷'
"법률에 신상공개 시기, 방법 등 명시해야"
"이게 무슨 얼굴 공개냐"
지난 26일 오후 1시 40분 경기 안양동안경찰서 앞. 피의자 김다운(34)이 나타나자 ‘촤르륵’ ‘촤르륵’ 사진기 셔텨 소리가 요란했다. 그는 이른바 ‘청담동 주식부자’ 이희진(33)씨의 부모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다.
이날 김다운은 경찰의 ‘신상공개’ 결정에 따라 모자와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지만, 사진기에 찍힌 것은 그의 안면이 아닌 뒤통수였다. 그가 "일정 부분 계획한 것은 맞지만, 제가 죽이지 않았다"고 말한 뒤 호송차에 오른 3분 동안 기자들은 수백장씩의 사진을 찍었지만, 그의 얼굴을 제대로 포착한 사진은 한 장도 없었다. 김다운이 지난 10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하기 위해 안양동안경찰서를 나섰을 때보다도 윤곽을 알 수 없는 ‘사태’가 벌어졌다.
경기 남부지방경찰청은 지난 25일 신상공개심의위원회를 열고, 당일 이름과 나이를 공개하고, 그가 검찰로 송치(送致)될 때 마스크·모자를 씌우지 않는 방식으로 신상정보를 공개했다.
그동안 피의자 신상공개 ‘절차’를 둘러싸고 경찰의 △ 자의적 판단 △이중처벌 논란 △무죄추정의 원칙 위배 등의 논란은 수차례 불거졌다. 이때마다 경찰은 피의자 신상공개를 심의하는 방식에 대해 내부지침을 강화해왔다. ‘증거가 확실할 때’라는 공개기준을 충족하기 위해 구속영장이 발부된 뒤 공개를 결정하고, 사건의 잔인성과 피해의 중대성, 공공의 이익 등을 체크리스트로 점검하고 있다.
피의자 얼굴을 공개하는 ‘방식’은 법률, 시행령에 구체적으로 명시돼있지 않다. 사실상 얼굴 공개를 결정한 경찰이 했던 것은 모자와 마스크를 착용하지 못하게 했던 것 뿐이다.
앞서 신상이 공개된 다른 피의자들은 규정이 아닌, 외투를 입지 않았거나 외투의 목 부분이 길지 않아 얼굴을 숨길 수 없었다. 인터넷에는 "얼굴 공개 범죄자들이 바람막이 자켓을 선호할 것 같다"는 의견도 나왔다.
김다운의 모습은 앞서 신상 공개가 결정된 다른 피의자들의 모습과도 크게 차이가 났다. ‘강서구 PC방 살인사건’ 김성수(29·공개 시점 2018년 10월)나 ‘서울대공원 토막살인사건’ 변경석(34·2018년 8월), ‘어금니 아빠’ 이영학(36·2017년 10월), ‘창원 골프연습장 납치 살인사건’ 심천우(33·2017년 7월)의 경우 외투를 입지 않거나 옷에 달린 카라 부분이 작아 얼굴을 숨길 수 없었다. 재가한 어머니의 일가족을 살해한 김성관(35·2018년 1월)의 경우, 겨울이었지만 외투를 벗은 상태로 기자들 앞에 노출돼 얼굴이 모두 공개됐다. 결국 김다운만 외투로 얼굴을 가리는데 성공한 셈이다.
경찰도 피의자 인권 등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특정 복장을 강제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경찰관계자는 "날씨가 추운데 일부러 외투를 벗기거나, 고개를 못 숙이게 할 수도 없는 것 아니냐"라며 "경찰이 과잉 행동했다고 비판받을 수 있다"고 했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피의자의 ‘얼굴’ 공개할 때 명확한 기준을 정하자는 주장이 나오는 상황이다. 미국과 캐나다, 영국, 일본은 ‘머그샷(범인 식별용 사진·mug shot)’처럼 수사기관이 정면, 측면 사진 등을 찍어 공개하고 있다. 현재 성범죄자의 신상과 개인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여성가족부 ‘성범죄자 알림e’에도 얼굴 사진, 좌우 측면사진, 전신 사진이 올라와 있다.
이병도 동국대 경찰·범죄연구소 연구원은 "무엇보다 법률로 피의자의 신상공개 시기나 방식 등 구체적인 내용을 명시할 필요가 있다"며 "지금처럼 법률 공백이 있는 상황에서 규칙이나 지침으로 경찰이 자의적으로 결정하고, 언론에 맡긴다면 오히려 다른 피해자를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