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흔 문화부 차장

인간의 기억은 때론 그다지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 뻔한 거짓말조차 반복되면 기억을 대체하고, 심지어 역사적 사실로 굳어지는 경우들이 있다. 2017년 3월 과학저널 네이처에 실린 '존재하지 않은 과거의 공유(The Shared Past that wasn't)'란 특집 기사는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 오류 정보가 확산되는 현상이 더 심해졌음을 보여준다. 기사는 남아공 최초 흑인 대통령 넬슨 만델라가 실제로는 2013년 사망했는데도, 페이스북 등에선 그가 '1980년대 감옥에서 숨졌다'는 내용과 함께 그를 추모하는 글과 사진이 광범위하게 퍼진 현상을 분석했다. 잘못된 정보가 소셜 미디어에서 새로운 기억을 형성하는 '탈진실(post-truth)' 사회의 병폐를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한국도 유튜브나 페이스북에 4·3 사건이나 한국전쟁, 5·18에 관한 다양한 주장이 올라온다.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끼리 같은 정보를 돌려보는 '필터 버블', 이로 인한 확증 편향 등은 심각한 수준이다. 바로잡지 않으면 집단 전체의 기억이 뒤틀릴 수 있고, 이에 기반한 '대체 역사'가 등장할 것이라는 우려마저 나온다. 일부 좌파 세력은 일찌감치 소셜 미디어 공간을 이용해 그들만의 '역사 만들기'에 나선 지 오래다.

최근에는 KBS까지 뛰어들었다. 지난 16일 KBS1 TV '도올아인 오방간다'에서 김용옥 한신대 교수는 이승만 전(前) 대통령을 미국의 '괴뢰'라 부르고, "국립묘지에서 파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해방 직후 미(美) 군정 사령관과 줄곧 대립했던 이승만을 괴뢰라 부르는 것은 사실 왜곡이다. 그는 "소련은 한반도를 분할 점령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는 거짓 주장도 했다. 이런 엉터리 발언을 1인 방송에서 했다면 '그러려니' 할 수도 있다. 하지만 KBS에서 이런 방송이 나가는 것은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한 사회 구성원들이 동의하기 힘든 주장이나 역사적 사실에 대해 특정 세력 시각에 입각한 해석이 '공영방송'이라는 권위를 등에 업고 나갈 때 불러올 혼란이 더 크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민족상잔을 벌인 6·25전쟁이나 빛나는 산업화 시기의 역사는 애써 외면하고, 해방 공간 남한에서 벌어진 일을 부정한 역사로 보고 이를 바로잡자는 이른바 '역사 정치'를 벌이고 있다. KBS는 김 교수의 입을 빌려 현 정부의 역사 정치에 자신들이 적극적으로 동조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이 방송 이후 KBS에 대한 각계 비판 목소리가 높아졌지만 KBS는 아직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KBS 다수 구성원은 1980년대 '국풍(國風) 81' 등에 동조했던 과거를 이야기하면 치욕적인 '관제 방송' 시기였다고 치를 떤다. 현 정부의 역사 정치에 뛰어든 지금의 KBS는 그때와 얼마나 다른지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