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늪에 빠졌다'.

서울예술고등학교 학부모 5인은 음악에 빠진 자녀를 이렇게 표현했다. 음악 전공을 하며 힘들어하는 아이에게 '그만두자'는 핀잔도 여러 번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아이들은 '음악이 아니면 안 된다'며 이를 악물고 버텼다. 학부모 손지영(50), 이영아(46), 이지혜(51), 장금주(40), 전은숙(47)씨는 음악을 전공하는 자녀를 키우며 경험한 시행착오 등을 모아 최근 '서울예고 입학 그 후'(키출판사)라는 책을 펴냈다. 이들은 "입학에 성공한 다음에도 신체적 고통이나 심리적 압박감을 아이와 함께 견뎌내며 매일 고군분투하고 있다"고 전했다.

서울예고에서 음악을 전공하는 자녀를 둔 학부모 장금주, 이영아, 전은숙, 손지영, 이지혜(왼쪽부터)씨. 이들은 “부모가 아이의 가능성을 정하거나 판단해선 안 된다”며 “아이가 음악 전공을 원한다면 도전해볼 가치가 있다”고 강조했다.

◇아이가 음악을 전공하면서 달라진 부모의 일상

이들의 일상은 아이가 취미로 하던 음악을 전공하겠다고 선언하면서부터 달라졌다. 어린 나이에 음악을 시작해 부모의 뒷받침 없이 전공을 준비하긴 쉽지 않기 때문. 일례로, 심화된 교육을 위해 동네 음악학원이 아닌 전공 레슨을 시작해야 했다. 이들은 우선 음악을 전공한 가족이나 친·인척, 지인 등을 통해 자녀에게 맞는 레슨 강사부터 구했다. 전은숙씨는 "예술중학교에 다닌 딸을 통해 뛰어난 성악 실력을 갖춘 친구를 알게 돼 아들의 첫 레슨을 부탁했다"고 했다. 주변에 마땅한 사람이 없어, 블로그나 SNS 등을 활용해 강사를 수소문하기도 했다.

특히 이들은 '엄마가 아는 만큼 아이도 성장한다'는 생각에 초중학교 시기 레슨에도 함께 참여했다. 손지영씨는 "바이올린을 전공하는 아이를 위해 레슨받는 모습을 녹음 또는 녹화하거나 악보를 보며 중요한 내용을 메모했다"며 "아이와 함께 수년간 몇 백번의 레슨을 거치고 나면 악기에 대한 기초 지식이 전혀 없던 부모도 전공자 수준으로 발전한다"고 말했다. 특히 시각장애 자녀를 둔 이지혜씨는 "피아노 연주곡에서, 비슷한 멜로디가 반복되지만 각각 다른 느낌으로 연주해야 하는 구간이 있다. 레슨이 끝나고 나서 아이에게 '서로 다른 소스로 만든 파스타를 먹는 느낌으로 표현해보자'는 식으로 설명해주며 엄마표 2차 레슨을 더한다"며 "아이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곡을 이해할 수 있도록 통역사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실기 연습에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하는 아이의 전공 특성상 입시 준비에도 부모의 꾸준한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예고 입시의 경우, 실기뿐만 아니라 성적, 출·결석, 봉사활동도 평가요소로 반영된다.

그중 가장 힘든 과제는 아이들의 슬럼프를 곁에서 지켜보고, 이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었다. "조급한 마음이 앞서 슬럼프를 겪는 아이에게 '핑계 대는 것 아니냐'며 잔소리를 한 적이 있어요. 사실 필요한 건 공감의 대화였죠. 레슨 선생님과 깊은 대화를 나누고 나서 표정이 밝아진 아이를 보고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이영아씨)

◇주변 선입견 극복 대상… 아이 스스로 결정해야

주변의 선입견도 이들이 극복해야 할 큰 산이다. 흔히 음악을 하려면 금전적 여유가 있어야 한다고들 말한다. 실제로 악기 구입비와 레슨비, 콩쿠르비 등에 만만치 않은 돈이 들어간다. 이들은 "음악 전공을 하는 아이를 위해 어느 정도 경제적 희생을 감수하겠다는 각오를 다질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렇다고 경제적으로 힘든 학생은 음악을 포기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개인이나 재단을 통해 재능 기부 형식의 레슨을 후원받거나 활동비 등을 지원받을 수 있다. 이지혜씨는 "아이에게 시각 장애가 있어 레슨을 받을 곳이 마땅치 않아 어려움을 겪었지만, 사단법인 뷰티플마인드의 도움을 받아 음악인의 꿈을 이어올 수 있었다"며 "지원을 받기에 앞서 오디션을 통과할 정도의 실력은 반드시 갖춰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음악적 재능이 뛰어나야만 전공할 수 있을까. 이것 역시 100% 정답은 아니다. 이영아씨는 "처음부터 재능이 있어서 음악을 시작하는 아이들은 많지 않다"며 "대다수의 부모가 아이들에게 '공부 머리가 뛰어날까? 좋은 회사에 들어갈 수 있을까?' 같은 고민을 앞세우지 않는 것처럼 음악을 택한 아이들에게도 '재능이 있을까? 진로는 잘 설정한 것일까?' 등의 잣대부터 내세우는 건 섣부른 일"이라고 했다.

오히려 음악 전공 자녀를 둔 부모 입장에선 '타고난 재능이 있다'는 소리가 속상하게 들릴 때도 있다. "무대에서 5~10분을 연주하기 위해 수백 수천 시간을 연습해요. 탁월한 재능보단 얼마나 성실하게 노력하는지가 훨씬 중요하죠." (이지혜씨)

"부모 욕심만으로는 음악 전공을 끈기 있게 이어나갈 수 없어요. 예고 입학 후에도 아이 스스로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하기 때문이죠. 부모의 욕심보다 아이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면 답이 보입니다."(장금주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