섀너핸 장관 대행

세계 최강 미군의 사령부 펜타곤에 주인 없는 사무실이 늘고 있다. 지난주에만 장·차관급 고위 관료 2명이 사임했다. 제임스 매티스 전 국방장관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시리아 철군 결정에 반발해 지난 연말 사임한 이후 펜타곤의 전력 이탈이 심화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군을 무시하는 트럼프 대통령과 기업인 출신이자 '트럼프 예스맨'으로 유명한 패트릭 섀너핸 국방장관 대행의 리더십이 군 내부에서 신뢰를 잃은 결과라는 지적이 나온다.

헤더 윌슨 공군부 장관(공군참모총장 위의 민간 총괄자)과 필리스 베이어 해군 에너지·환경·장비 담당 차관보가 지난 8일 나란히 사임을 발표했다. 두 사람 다 군에서 잔뼈가 굵은 여성이다. 윌슨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우주군 제6군 창설'에 반대해 오랫동안 갈등을 빚어왔다. 해군 기반 시설 등을 총괄하는 베이어 차관보 역시 트럼프 대통령의 국경 장벽 예산 확보를 위한 군 예산 전용(轉用)의 타격을 받게 되자 사표를 낸 것으로 전해졌다.

미 국방부는 이미 장관·부장관 등 서열 1~3위가 모두 임시직 대행(acting) 체제다. 패트릭 섀너핸 국방부 부장관이 장관 직무를 대행하고, 부장관은 데이비드 노키스트 국방부 감사관이 대행하는 식이다. 차관 7명 중 2명이 없고, 차관보 중에서도 절반가량이 직무 대행이나 임시직이다. 외교 전문지 포린폴리시(FP)는 "펜타곤 내 공석(空席) 숫자가 나날이 최고기록을 경신하고 있다"며 "빈 사무실이 '뉴 노멀'(새로운 기준)이 됐다"고 했다.

트럼프 정부의 인사 공백이 새로운 일은 아니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현재 상원 인준이 필요한 연방정부 각 부처 고위직 712자리 중 429자리만이 인준을 받았다. 특히 정파와 관계없이 대외 업무를 오랫동안 해온 전문가들이 집중된 외교·안보 부처에서 이 현상이 유독 심하다. 국무부에서 직업 외교관들이 동맹을 무시한 트럼프 외교에 항의해 줄사퇴했는데, 국방부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본격화한 것이다. NPR은 18일 "세계에 미군을 대표하는 얼굴인 펜타곤에서 엑소더스(exodus·대탈출)가 계속되면 동맹과 적국 모두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고 했다.

국방부 엑소더스의 이유로는 일단 트럼프 대통령의 잇따른 '군 무시'가 꼽힌다. 지난해 매티스 전 장관이나 동맹국과 상의 없이 일방적으로 시리아 철군을 발표한 게 대표적 예다. 트럼프는 임기 초 존 켈리 전 비서실장, 허버트 맥매스터 전 NSC 보좌관 등 장성 출신을 중용하는 듯하다 고분고분히 굴지 않자 잇따라 내쳤다. 또 대통령이 해외의 미군 전투 지역 방문을 2년 가까이 미뤘고, 참전 영웅들을 홀대한다는 논란이 이어졌다.

매티스 장관의 공백을 두 달 넘게 메우고 있는 섀너핸 장관 대행 체제도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CNN은 섀너핸이 지난 14일 상원 청문회에서 "국경 장벽 건설에 군 예산을 36억달러(약 4조원)나 전용한다는데, 어떤 사업이 영향을 받느냐"는 질문에 "리스트를 안 갖고 있어서 모른다"고 답해 의원들을 경악시켰다고 보도했다. 며칠 뒤 군사 동맹 핵심인 한미연합사 시설이 예산 전용 대상에 오른 사실이 드러나 파문이 일었다. 또 항공사 보잉 엔지니어 임원 출신인 섀너핸이 최근 잇따른 보잉737 맥스8 사고에도 미 정부만 해당 기종 운항을 계속하도록 결정한 데 모종의 역할을 한 게 아니냐는 윤리 논란도 불거졌다.

한 전직 국방부 관료는 FP 인터뷰에서 "국방부 직원 대부분은 대통령과 매티스를 위해 일하려고 왔지, 섀너핸을 위해 온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WP는 "섀너핸이 군을 잘 모르기 때문에 군의 철밥통을 깨고 예산 절감 등 개혁을 이뤄낼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있었다"며 "그러나 대통령과 의회 사이에서 갈팡질팡해 영(令)이 서지 않고 있다"고 했다. 더힐 등에 따르면 백악관은 군에서 신망 있는 장관 후보를 찾으려 몇 개월 노력했지만 모두 현 정권에서 일하기를 거부했고, 그냥 고분고분한 섀너핸을 장관으로 지명하려다 의회에서 비판이 커지자 고민 중이라고 한다.

트럼프 정부에서 장관 등 임명직 관료의 잇따른 퇴진으로 군에 지나친 힘을 실어주는 의외의 결과를 낳는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내셔널인터레스트는 "민간인 관료들이 갑자기 물러나거나 군을 제대로 통솔하지 못하자 현역 군인들이 실무 공백을 메우고 있다"며 "이는 헌법에 명시된 '민간의 무력 통제(civilian control)' 원칙을 무너뜨릴 위험이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