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북 협상 중재자로서 문재인 대통령의 신뢰도가 시험대에 올랐다는 워싱턴포스트(WP)의 분석이 나왔다.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미·북 정상회담이 결렬된 후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까지 비핵화 협상 중단 가능성을 거론하자 미·북 협상을 위한 문 대통령의 노력이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15일(현지 시각) WP는 ‘하노이 회담 결렬 후 중재자로서 문 대통령의 신뢰성이 위태롭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문 대통령의 미·북 중재자로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WP는 "지난 3주간 문 대통령은 임기 중 가장 힘들었을 것"이라고 운을 떼며 "하노이 회담이 결렬되면서 한국 지도자의 통치 중심축인 북한과의 화해 국면이 찢겨졌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3월 8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주한대사 신임장 제정식에 참석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최선희가 미국을 "강도 같다"고 부르며 미국과의 협상 중단을 고려 중이라고 밝힌 것도 문 대통령이 힘든 시기를 겪게 했다고 했다. 최선희는 지난 15일 평양에서 긴급 외신 기자회견을 열고 "우리는 미국 요구에 어떤 형태로든 양보할 의사가 없다"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중단 상태를 계속할지 여부를 곧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WP는 최선희 기자회견 중 "미국의 동맹인 남조선은 (미·북 간) 중재자가 아니다"라고 말한 대목에 주목했다. 이런 최선희 발언은 우리 정부가 얘기해 온 ‘중재자’ 역할을 사실상 거부한 것이기 때문이다. 신문은 이 발언을 두고 "문 대통령의 노력이 북한에서도 충분히 인정받지 못하는 것 같다. 문 대통령이 직면한 어려움이 어느 정도 반영된 것"이라고 했다.

WP는 북한 전문가로 꼽히는 존 델러리 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의 말을 인용, 문 대통령의 힘든 상황을 전했다. 델러리 교수는 "북한 공산주의자들과 공화당 대통령(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사이를 중재하는 한국의 진보적 중재자 자리는 쉽지 않다"고 했다.

WP는 우리나라 내에서 문 대통령이 비판받은 일도 전했다. 신문은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대한민국 대통령이 김정은 수석대변인이라는 낯뜨거운 이야기를 듣지 않도록 해달라’는 발언해 논란이 됐다고 했다. 문 대통령 지지율이 취임 이후 최저치로 떨어진 것도 언급했다. 지난 12~14일 한국갤럽의 문 대통령 국정 수행에 대한 평가 조사에서 응답자의 44%만 긍정적으로 답해 취임 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2차 미·북 정상회담 이튿날인 2019년 2월 28일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 대통령과 김정은(왼쪽) 북한 국무위원장이 베트남 하노이의 소피텔 레전드 메트로폴 호텔에서 회담 도중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 WP는 "(문 대통령을 향한) 공격은 한국 내 정치계뿐만 아니라 워싱턴(미국)과 유엔(UN)에서도 나왔다"며 문 대통령이 국제사회의 비판에 직면했다고 전했다.

신문은 미 국무부가 최근 ‘2018 국가별 인권보고서’를 내면서 한국 정부가 탈북민의 대북(對北) 비판 활동을 줄이려 했다는 점을 지적했다고 설명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탈북자들은 ‘문 정부의 대북 포용 정책을 비판하는 공개적인 언사에 참여하지 말아달라’는 요구를 받았다. WP는 "인권변호사 출신인 문 대통령은 평화 정착을 위해 북한의 비참한 인권을 경시했다는 이유로 끈질긴 비판에 직면했다"고 평했다.

WP는 우리나라 정부가 유엔 전문가 패널 보고서에서 ‘지난해 한국 정부가 북한으로 석유제품 300톤 이상을 보내면서 유엔에 보고하지 않았다’고 지적받은 것도 언급했다. 우리나라 정부는 이와 관련 "(남북) 사업 이행 과정에서 남측 인력이 사업 이행을 위해 석유제품을 독점적으로 사용했고, 북한에 어떤 경제적 가치 이전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점을 보장한다"고 답했다. 하지만 유엔 제재위원회 전문가 패널의 판단은 달랐다. 유엔은 보고서에서 "그래도 이 거래는 제재위에 보고해야 했다"고 비판했다.

중재자로서 신뢰를 잃은 문 대통령이 교착상태에 빠진 미·북 협상의 타개책으로 김정은의 서울 방문 카드를 내걸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델러리 교수는 WP에 "문 대통령은 아마도 김정은을 서울로 초청해 교착상태를 해소하겠다는 최선의 희망을 품을 수 있다"고 했다. 문 대통령과 김정은의 사이가 좋은 것도 김정은을 다시 협상 테이블로 불러들일 수 있는 이유로 꼽았다.

그러나 다른 북한 전문가들은 회의적인 시각을 내놨다. 미 브루킹스연구소의 정 박 한국석좌는 "현재 진행 중인 일이 많고 누군가는 지휘봉을 잡아야 하는데 남북 경제협력 등 한국의 접근법이 옳은 답인지 모르겠다"고 WP에 전했다. 카네기-칭화 국제정책센터의 자오 퉁 연구원도 문 대통령의 신뢰 구축 방식이 최선책이냐는 의구심이 커진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