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화 그리면서 해부학 배워 뭐에 쓰냐고 '괴짜' 소리도 들었지만, 근육과 골격을 이해해야 선현(先賢)의 얼굴을 정밀하게 재현할 수 있습니다." 조용진(69) 미술해부학 박사가 크고 쌍꺼풀진 눈의 흙빛 두상을 보여줬다. 두상 오른쪽으로 깊은 팔자주름을 가진 남성의 초상화가 보였다. 두상과 초상화의 주인공은 한국독립군 총사령관이었던 지청천 장군. 그는 "본인은 물론 후손의 정면·측면 사진을 보고 골격이나 이목구비 등 약 300곳의 용모 특징을 파악해야 얼굴 재현이 가능하다"고 했다.
'얼굴 학자'로 불리는 조 박사가 최근 저서 '한국인의 얼굴·몸·뇌·문화'를 출간했다. 40년간 연구한 한국인의 기원과 신체적 특징, 고유문화를 담았다. 그는 동양화와 해부학을 공부한 '한국 얼굴 전문가'다. 한국인의 기원과 유전학적 특성을 토대로 선현의 얼굴, 한국인의 형질 등을 연구한다. 대학에서 동양화를 전공, 도쿄예술대에서 미술해부학 박사 학위를 받고 20년간 서울교대 미술과 교수를 지낸뒤 2003년부터 형질문화연구소(전 한국얼굴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그는 "동양화를 공부한 만큼 한국적인 모습을 재현하고 싶어 한국인 신체와 형질 연구를 시작했다"고 했다.
충남 서천 출신인 그가 미술에 관심 갖게 된 건 초등학교 3학년 때 만난 담임교사 덕이다. 학원 한 번 다니지 않고 군(郡) 미술 대회 1등을 휩쓰는 그에게 선생님은 화가를 권했다. 화가라면 극장 간판 그리는 사람을 떠올리던 그에게 담임은 '레오나르도 다빈치 같은 예술가가 돼라'고 했다. 그 말을 듣기 위해 백과사전을 달달 외우고 해부학 독학도 시작했다. 변변한 책이 없어 학교에선 과학 시간 개구리 해부를 유심히 봤고, 집에선 식용으로 잡은 닭이나 염소 같은 가축의 장기를 보며 스케치했다.
1968년 홍익대 미대에 입학, 동양화를 전공하고 1972부터 7년간 가톨릭의과대 해부학 조교를 했다. '1972년 4월 23일 토요일 오전 10시.' 아직도 첫 시신 해부 시각을 기억한다는 그는 "화가로서 해부학에 입문한다는 생각에 전율이 흘렀다"며 "한국 문화의 일부인 동양화, 그중에서도 인물화를 그리려면 한국인의 신체적 특성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조 박사는 "한국인은 다리 근육 길이가 길고 힘줄 길이는 짧아 단거리 달리기보다 다리 힘을 내는 역도나 마라톤에 적합하다"며 "양궁에서 탁월한 성적을 보이는 건 공간 지각과 형태 지각에 뛰어난 눈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유전적 우월성을 논하는 것 아니냐며 비판하기도 하는데, 전혀 아니에요. 오히려 노력으로 어떤 점을 보완해야 하는지 알 수 있죠. 유전 집단 간 개성 차이일 뿐입니다."
조 박사의 최종 목표는 '한국적 미술해부학의 정립'이다. 앞으로 선현들의 목소리까지 재현하겠다는 그는 "모양과 속성을 연구하는 형질 연구는 한국인을 알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이라며 "'우리 것'의 가치를 파고드는 데 앞장서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