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자이푸르의 길거리에서 한 소년이 물건을 팔고 있다. 황영애 작가의 1960년대 작품 ‘꽃나라에서 온 소녀’에 나오는 봉실이와 소년A는 창경원 앞에서 코끼리 과자를 팔던 당찬 아이였다. 이들이 실존 인물이었다면 아마 지금쯤 노인이 됐을 것이다. 여태껏 노인들의 옛날이야기는 자신이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 뽐내기 위한 것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이렇게 그들의 어린 시절을 마주해 보니, 나도 모를 미소가 나왔다.

어린 시절, 대구 큰이모댁에 가서 읽을거리를 찾으면 이모부는 베란다 문을 열고 먼지 쌓인 책더미를 가리키시곤 했다. 짧으면 10년, 길면 20~30년 된 '월간 새벗'으로,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창간된 어린이 잡지다. 연배가 좀 있으신 분들이라면 다소 촌스러운 폰트로 찍혀 있는 '월간 새벗' 표제 아래 어린이들이 활짝 웃고 있는 표지를 기억하실지도 모르겠다. 품위 있는 어린이 교양지로 인정받아 1980년에 색동회상을 받았고, 같은 해 문공부장관상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착하기만 했던 탓인지 경쟁력이 떨어져 적자 누적으로 1981년 폐간될 신세에 처하고, 타사가 인수해 계속 간행하였으나 적자로 2002년 발행이 중단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2004년부터 다시 어린이들과 만나고 있는 '월간 새벗'은 꽤 많은 양의 어린이용 소설 단행본 '새벗 문고'를 함께 내놓았는데, 원로 아동문학가들이 잡지의 색에 딱 어울리는 건전한 동화를 다양하게 써냈다. 가끔은 너무 건전해서 읽다가 짜증이 치밀어 오르기도 했지만, 발행 주체가 기독교 단체였던 데다 아이부터 노인까지 새마을 정신을 명심하고 살아야 했던 시대였음을 기억한다. 밝고 꿋꿋하고 근면한 어린이상을 보여 주어야 한다는 신념을 모든 작가가 공유하고 있었던 것 아닐까.

나는 워낙 어릴 때부터 이렇게 착하고 밝게 살라는 어린이 소설들이 질색이었기 때문에 인상에 크게 남는 작품이 없지만, 황영애 작가의 1960년대 작품 '꽃나라에서 온 소녀'는 아직 기억하고 있다.

제목처럼 너무 티 없이 맑은 열두어 살 난 씩씩한 고아 소녀 봉실이가 주인공이다. 사람들이 성이 무엇이냐 물으면 자신의 이름은 '꽃봉실'이라며 꽃 나라의 임금님이 자신의 아버지고 여왕님이 자신의 어머니라고 대답한다. 꽃 나라로 돌아가야 하는 길을 잠시 잃었다고 생글생글 대답하는 봉실이를 알게 되는 사람들은 아리송해진다. 하지만 밝고 상냥한 봉실을 한번 알게 된 사람들은 애고 어른이고 할 것 없이 봉실을 어여삐 여기게 된다. 간혹 '꽃씨'가 어디 있느냐고들 묻지만, 봉실은 어차피 부모가 없어 성을 모른다면 자신이 가장 어울리는 성을 고르면 되는 거 아니겠느냐고 당차게 반문한다. 착하고 싹싹한 봉실을 애틋하게 여겨 수양딸로 삼으려는 가족도 있지만, 봉실은 자존심 높은 한 마리 들고양이처럼 혼자 힘으로 언젠가 꽃 나라에 돌아가고자 한다.

봉실에게는 거리에서 알게 된 친구 소년 A가 있는데(너무 오래되어 죄송하게도 그만 잊어버리고 말았다), 시골에서 살다가 돈을 벌기 위해 서울로 올라온 이 소년도 봉실과 막상막하로 꿋꿋하다. 공부를 잘하는 형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거리에서 노점상을 하는 이 소년은 형을 실컷 공부시키고 또 집안을 일으키고야 말겠다는 굳은 결심으로 신선한 사업 아이디어를 계속 연구한다. 그러다 어린이들에게 책을 얼마씩 받고 빌려주는 '도서 대여 구루마'로 쏠쏠하게 재미를 보는가 했더니, 지역에서 텃세를 부리는 깡패들이 책과 돈을 빼앗고 수레를 몽땅 부수어 못 쓰게 만들어 버린다. 코피를 줄줄 흘리면서도 피를 닦아 주려는 봉실의 손길을 거절하는 소년 A는 요즘 말로 하면 '상남자'다.

봉실의 기개가 소년 A와 잘 맞아떨어져 둘은 단짝이자 사업 파트너가 된다. 어떤 사업을 둘이 꾸렸는가 하면, 일제 강점기에 일제가 창경궁을 훼손하여 유원지로 만든 '창경원'(1983년 폐쇄 후 지금의 창경궁으로 복구되었다)을 구경하다가 떠올리게 된 아이디어였다. 당시 창경원 하면 코끼리, 코끼리 하면 창경원이라 할 만큼 창경원 동물원의 명물 노릇을 한 것이 코끼리였다. 손님들은 저마다 맛나는 과자를 사서 먹으며 코끼리 구경을 하건만 코끼리는 마른 풀더미를 맛없다는 듯이 씹는 것을 보고 봉실이가 "코끼리는 참 불쌍해. 까까도 먹을 수 없고 말이야"라고 말하자 소년 A는 사람을 위한 까까는 얼마든지 있지만, 코끼리를 위한 까까는 없다는 것에 착상해 바로 아이디어를 낸다.

그래서 두 사람은 '코끼리 까까'를 만들어 팔기 시작한다. 코끼리에게 먹이를 준다는 신선함에다 어린 두 아이가 열심히 일하는 것도 대견하다 여겨지면서, 코끼리 까까 장사는 선풍적인 인기를 얻는다. 요즘 같으면 동물원 당국에서 엄격히 규제할 일이지만, 1970년대에 취객이 호방하게 우리에 팔을 넣었다가 호랑이에게 물려 팔이 절단되는 사고가 일어날 정도였으니 아이들의 이런 자그마한 소매업 정도는 봐 주는 분위기였을지도 모른다.

코끼리 까까 장사는 순조롭지만, 봉실의 얼굴은 나날이 창백해진다. 영양 상태가 불량하여 폐병을 앓게 된 것이다. A 는 봉실을 동생 순영에게 부탁해 시골 고향집에서 요양하도록 한다. 아름다운 자연환경 속에서 몸을 건강히 하며 A의 형에게 대학 노트를 부탁해 남는 시간 글을 써내려가는 봉실. 어느 정도 몸이 건강해진 나날, 글에 심취하다 그만 새벽녘에 잠이 들어 버린 봉실을 A의 형이 세차게 깨운다. 두꺼운 대학 노트를 가득 채워 내려간 봉실의 글 솜씨에 감탄하여 너는 반드시 작가가 되어야 한다고 다짐을 시키는 것이다. 그때야 봉실은 자신이 왜 고아인지 깨닫는다. 꽃 나라의 임금님과 여왕님인 부모님이 자신을 이 세상을 보낸 이유는 주어진 글솜씨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라는 사명을 가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희미한 새벽 별빛 속에 무릎을 꿇고 꼭 이 세상을 꽃 나라로 만들겠다고 다짐하면서 꽃 나라 공주 봉실의 이야기는 끝난다.

친구와 이 동화에 대해 "어휴, 피곤해. 정말 피곤해!"라고 하며 질색 팔색을 하다 문득, 봉실과 일행들이 살아 있다면 아마 '국제시장' 같은 것을 키워나간 1940~50년대 태생의 베이비 붐 세대였겠구나, 하고 나이를 꼽아 보았다. 틈만 나면 젊은 애들을 붙잡고 자신이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 이야기하는 지루한 어른들로만 여겼던 그 세대의 어린 시절을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열심히 살아야만 했던 그들의 싱그러운 시절이 어려운 경제 상황 속에서 '꽃 나라'를 찾아 헤매는 것과 같았을까.

오랜만에 봉실이를 떠올리니 늘 질색으로 여겼던 우리나라 베이비붐 세대들의 억척에도 그렇게 푸르른 나날이 있었겠구나 싶었다. 꽃 나라를 찾아 헤맨 사람들, 모두 자신의 꽃 한두 송이씩은 피워 내셨을지. 갑자기 떠오른 봉실의 기억 때문에, 이렇게 남몰래 나 혼자 베이비붐 세대와 일방적으로 화해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