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보〉(110~128)=바둑은 초기 인공지능(AI) 연구의 핵심 모델로 출발한 뒤 AI의 덕을 가장 많이 본 분야로 꼽힌다. 학문 분야와 달리 승패와 선악이 선명하게 갈리는 바둑의 특성이 한몫했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들의 입장에선 수 천년간 쌓아온 이론이 AI에 의해 하루아침에 폐기되는 수모도 함께 겪고 있다. 종전의 우형(愚形)·악수·완착이 AI에 의해 복권(復權)되거나 또는 그 반대의 경우가 수시로 등장한다.

백은 좌변을 못 지키고 110에 침입해 하변 흑 파괴에 나섰는데, 바로 이 수가 인간의 한계를 보여준 한 수란 오명을 썼다. 실전부터 보면 115까지는 일단 필연. 116으로 꼬부렸을 때 흑은 117로 같이 깨는 작전을 들고나온다. 122까지 상전벽해의 변화가 이뤄졌다. 그렇다면 거슬러 올라가 110으론 어떤 대안이 있었을까. 참고도를 보자.

인공지능 줴이가 제시한 수는 1, 3이었다. 인간계 수법 사전엔 없는 '무식한' 수다. 하지만 25까지의 외길 수순으로 빅이 된다. 이는 백이 선수로 하변 흑집을 몽땅 폭파한 결과다. 게다가 흑은 A의 약점 때문에 B로 지킬 틈도 없다. 검토실의 어느 프로도 AI가 제시한 이 수단을 발견하지 못했다. 128로 나가 중앙전이 격화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