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현우 논설위원

이제 '좋음'은 바라지도 않는다. '매우 나쁨'만 아니었으면 좋겠다. 한 달 전만 해도 미세 먼지 수치가 30을 넘으면 마스크 써야 하나 망설였는데 이젠 수시로 100을 넘는다. 세계 미세 먼지 도시 1위를 차지했다는 인천 사진을 보니 정말로 모래폭풍 맞은 도시 같다. 어쩌다 한국이 세계 최악의 미세 먼지 국가가 된 것일까.

당연히 중국 때문이다. 황사가 중국에서 불어오지 않는가. 중국의 굴뚝 공장들과 석탄 발전소, 중국 동해안에 촘촘히 들어찬 소각장에서 뿜어내는 먼지가 서풍을 타고 인천부터 덮치는 것이다. '미세 먼지 세계 1위'를 다르게 설명할 방법이 없다.

그런데 이상하다. 정부나 환경단체 어디서도 중국 탓을 하지 않는다. 대통령은 3·1절 기념사에서 '빨갱이는 독립운동가'라고 처음 듣는 말만 했다. '매우 나쁨'이 일주일쯤 계속되자 드디어 국민이 먼지 구덩이에서 일한다는 걸 깨닫고 한마디 했다. '중국과 인공강우 실험' '노후 석탄 발전소 조기 폐쇄'였다. 중국에 책임을 묻겠다는 말은 없었다. 미세 먼지 속에서 태양광 발전을 어떻게 할 것인지도 말하지 않았다. 서울시장은 낡은 경유차만 탓하고 있다. 40만대인 수도권 노후 경유차가 지난 일주일 새 400만대로 늘었나. 경유차 잡으면 정말 '매우 나쁨'이 '좋음' 될까.

가장 이상한 건 환경단체다. 정부나 지자체가 중국 탓 하기 어렵다면, 환경단체는 천안문 앞에 가서 시위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시민단체는 원래 그런 곳이다. 고속철도 건설하면 도롱뇽 살리라고 시위하고, 사드 갖다 놓으면 전자파로 온몸이 튀겨진다고 노래하고, 미국산 소고기 먹으면 뇌에 구멍이 뚫릴 거라고 외치던 그 결기는 어디 갔는가. 하기야 잠자코 기다리고 있으면 공기업 사장이나 감사, 심지어 환경부 장관도 될 터인데 '진짜 환경운동'을 할 이유가 없을지도 모른다.

환경 이슈에 핏대 세우던 방송들도 마찬가지다. 광우병 헛소문을 퍼뜨렸던 방송사는 지금쯤 '폐송송 구멍탁' 하면서 뉴스와 시사 프로를 총동원해 정부와 중국을 공격할 것 같은데 아주 조용하다. 이 방송은 보름 전쯤 "포스코가 한국 미세 먼지의 13% 배출"이라고 갑자기 우리 대표적 굴뚝 기업을 공격했다. 그런데 불과 며칠 뒤 인천 미세 먼지가 191㎍/㎥으로 최악을 기록한 날 포항은 23㎍/㎥으로 '좋음'이었다. 이 방송은 광우병 때처럼 '아니면 말고' 했다.

광우병 걸린 사람 한 명 없고 사드 전자파 튀김도 먹어본 적 없는데 그 난리 쳤던 이들은 왜 눈에 보이고 목과 눈이 따가우며 의학계가 일제히 폐암 경고하는 미세 먼지에 흥분하지 않는가.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란 변명은 말이 되지 않는다. 대통령이 "미세 먼지 30% 줄이겠다"고 공약하지 않았나. 이전 대통령 시대 일이었어도 그냥 넘어갔을까.

명백히 현존하는 미세 먼지를 대통령부터 환경단체, 친정부 언론까지 모른 척하는 이유를 국민은 알고 있다. 굴뚝에서 나온 먼지이고 중국에서 주로 오기 때문이다. 굴뚝 탓을 하자니 탈원전 명분이 약해지고 중국에 항의하자니 대북 관계에 영향을 줄 것 같다. 나름대로 냉가슴 앓고 있는 것이다.

중국에 항의한다고 그들이 발전소와 소각장을 부수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 정부가 국민을 위해 일하고 있다는 생각은 들 것이다. 속이라도 시원하게 해주지 않을 요량이면, 전등 끄기 알바 같은 일자리에 수십조원씩 쓸 돈으로 마스크나 사서 나눠줬으면 좋겠다. 하루 쓰고 버리라는 마스크 값이 만만치 않다. 아마 지금껏 내놓은 미세 먼지 정책 중 가장 환영받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