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지난달 28일 전국 검찰청에 '수사 과정에서 피의 사실 공표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유의하라'는 내용의 지휘 공문을 보낸 데 대한 검사들의 대체적인 반응은 "느닷없다"는 것이었다. 검찰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피의 사실을 흘리고 그 과정에서 피의자 인권이 침해되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런데 하필 왜 이 시점에서 이 문제를 꺼냈는지 의아하다는 것이다.
박 장관이 2017년 7월 취임한 이후에도 검찰은 수없이 피의 사실을 흘렸다. 이른바 '국정 농단' 사건부터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에 이르기까지 검찰 수사는 중계방송하듯 이뤄졌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경우 300여쪽에 이르는 공소장 내용이 기소도 되기 전에 거의 다 언론을 통해 보도됐다.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그 와중에 불행한 일이 생기기도 했다. 지난 정권에서 검찰의 국정원 수사를 방해했다는 혐의로 2017년 11월 구속영장이 청구됐던 변창훈 전 검사는 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지인에게 "검찰이 사실과 다른 피의 사실을 언론에 흘려 괴롭다"며 억울해했다고 한다. 그간 이런 일들이 있었지만 박 장관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러다 왜 이제 와 피의 사실 공표 문제를 꺼내느냐고 검사들은 묻고 싶은 것이다.
박 장관은 공문에서 특정 사건을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실상 서울동부지검이 수사 중인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을 겨냥한 것이라고 상당수 검사는 받아들이고 있다. 최근 언론에 집중 보도되는 수사로는 이게 거의 유일하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청와대와 환경부가 전(前) 정권에서 임명된 환경부 산하기관 임원들을 표적 감사 등을 통해 찍어내고 그 자리에 친(親)여권 인사들을 앉혔다는 의혹에 대한 것이다. 검찰은 관련 혐의를 뒷받침하는 상당수 문건과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사가 진행되면 청와대도 수사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검찰이 오랜만에 '죽은 권력'이 아니라 '산 권력'을 수사하는 셈이다. 그런데 박 장관은 검찰이 과거 정권을 수사할 땐 뒷짐 지고 있다가 현 정권을 수사하자 '입 닫으라'고 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진의가 무엇이든 '이중 잣대'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형법은 기소 전 피의 사실 공표를 금지하고 있다. 이에 맞춰 검찰도 제한된 범위 내에서만 수사 상황을 공개하는 수사 공보(公報) 준칙을 운용하고 있다. 하지만 여론을 등에 업으려고 검찰이 피의 사실을 언론에 흘리고, 언론이 그걸 받아쓴 일이 많았던 게 사실이다. 검찰에 대한 지휘·통제권을 갖고 있는 법무부 장관으로선 이에 대한 문제를 충분히 제기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시점을 놓고 보면 그의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