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항거: 유관순 이야기

3·1절 맞이 애국 영화지만 의외로 촌 스럽지 않다. 항일 영화의 대결 구도만 수긍하고 들어간다면 유관순으로 분한 배우 고아성의 눈빛 연기와 흑백 화면의 미장센은 탁월하다. 옥사에 갇힌 수인(囚人)들 간 여성 연대는 '허스토리(herstory)'에 귀 기울이는 요즘 경향을 잘 짚었다.

지난 27일 개봉한 '항거: 유관순 이야기'(감독 조민호)는 충남 병천에서 만세 운동을 주도한 유관순이 서대문형무소에 갇히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8호실에 입실하자마자 "나는 개구리가 아니다"를 외치다 붙잡혀 가고, 만세 1주년을 앞두고 정확한 날짜를 알기 위해 세탁실에서 노역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때론 동료들에게 "1년 전으로 돌아가도 만세 운동을 할 것 같으냐"고 물으며 고민하는 10대 소녀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담았다. 하지만 영화가 중·후반을 향해 달려갈 때쯤 그의 '항거'에서는 성인 모습이 겹쳐 보이기도 한다. 마지막 장면 촬영을 위해 닷새간 굶었다는 고아성은 죽음을 앞둔 유관순의 묘한 눈빛을 새파랗게 그려낸다.

흑백 효과를 활용해 불필요한 자극을 덜어낸 영화이기도 하다. 감독은 "처참함을 덜기 위해 흑백을 썼다"고 했다. 검붉은 피나 시퍼런 멍의 참혹한 빛깔을 사실적으로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는 것. 색감을 빼고 빛을 살리는 데만 집중한 결과 보고 있기 괴로운 영화임에도 미장센에 감탄하게 된다. 10㎡(3평) 남짓한 옥사에 희미하게 스며드는 빛, 흰 눈발이 날리는 서대문형무소 전경은 질감부터 남다르다.

기생 30여 명을 데리고 경찰서 앞에서 만세 운동을 한 수원의 김향화(김새벽), 개성에서 만세 운동을 주도해 투옥된 유관순의 이화학당 선배 권애라(김예은) 등 주목받지 못한 8호실의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소개했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다. 여성들의 끈끈한 우정과 연대도 감동적이다.

클래식 | 유관순 오페라 칸타타

서울 시민 80명이 100년 전 그날, 유관순(1902~1920) 열사와 함께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친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2일 오후 5시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서울시합창단이 선보이는 ‘유관순 오페라 칸타타’가 그 무대다. 칸타타는 17~18세기 바로크 시대에 발전한 성악곡으로 오페라 칸타타는 독창·중창·합창으로 이뤄진 칸타타에 연기적 요소를 더한 극이다. 매봉교회 예배당에서 기도하는 유관순부터 정동교회에서 치러진 장례식까지 십대 후반 여린 몸으로 일제에 맞섰던 열사의 그때를 음악으로 그린다. 2011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우승한 소프라노 서선영이 유관순 열사 역을 맡는다.

넷플릭스 | 엄브렐러 아카데미

지금 콘텐츠업계에서 가장 잘나가는 장르는 액션도 SF도 스릴러도 아니다. 히어로다. 넷플릭스는 ‘어벤져스’의 동네 버전인 ‘디펜더스’ 시리즈를 제작했다가 재미를 보지 못하자, 다른 방향으로 눈을 돌렸다. 미국의 수퍼 스타 록밴드 ‘마이케미컬로맨스’의 리더 제러드 웨이가 스토리를 쓴 ‘엄브렐러 아카데미’를 드라마로 제작하며 다시 영웅문(門)에 발을 들인 것. 한날한시 처녀 수태로 태어난 아이 7명을 백만장자가 입양한다. 초능력을 가진 아이들은 히어로로 교육받지만 모종의 사건으로 뿔뿔이 흩어진다. 양아버지가 죽던 날 오랜만에 다시 모인 이들은 8일 뒤 지구가 멸망할 예정이라는 걸 알게 된다. 흔한 히어로 얘기 같지만, 말미에서 신선한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콘서트 | 임태경: 기억의 조각

따스한 음색과 풍부한 성량이 산뜻한 봄날을 찾는다. 뮤지컬계의 황태자 임태경 단독 콘서트다. 그는 지난 2016년 콘서트 '기억의 조각'으로 관객을 만났다. 당시 뮤지컬 모차르트의 오프닝 넘버로 시작해 오페라 아리아, 영화음악, 팝송, 가요 등 다양한 장르를 선보였다. 어떤 장르에도 연약해지거나 무너지지 않고 맞서는 단단한 보컬이었다. 이번 콘서트는 같은 이름이지만 사뭇 다른 느낌. 한국 가곡과 해외 명곡 위주로 여러 클래식 가요를 그만의 색으로 그려낸다. 전 공연이 뮤지컬이었다면 이번 콘서트는 연극이다. 어쿠스틱 반주에 살짝 얹힌 임태경의 목소리는 봄날 저녁 살랑거리는 바람이 싣고 오는 추억 같다. 2일 오후 7시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

전시 | 모두를 위한 세계

일본 작가 히카루 후지이(43)는 15분짜리 동명의 영상 작품을 통해 ‘2·8 독립선언서’를 다시 불러낸다. 일본에 거주하는 베트남 유학생들을 섭외해 카메라 앞에서 1919년 당시 2·8 독립선언서를 한 줄씩 낭독하게 한 것이다. 그해 3월 1일의 불씨가 된 이 운동을 ‘이민’이라는 21세기적 축으로 재현함으로써 “차별받는 존재(베트남 노동자)를 통해 지금도 일본에 남아있는 불의와 불평등의 흔적을 조명”하려는 시도다. 3·1운동 100주년 기념전 ‘모두를 위한 세계’가 서울시립남서울미술관에서 5월 26일까지 열린다. 한·일 양국의 이항 대립을 초월해 동시대 미술의 지평에서 3·1운동의 의미를 바라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