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율리아나 아브제예바(34)의 시계는 9년 전부터 돌기 시작했다. 쇼팽 탄생 200주년이던 2010년 열린 제16회 쇼팽 콩쿠르에서 1위를 거머쥐었다. '피아노의 살아 있는 전설' 마르타 아르헤리치 이후 45년 만에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한 여성 피아니스트였다. 무엇보다 당시 걸출한 신예로 손꼽히던 잉골프 분더(2위)와 다닐 트리포노프(3위)를 제쳐 세계를 놀라게 했다. 콩쿠르 당시 그가 입은 의상도 화제를 뿌렸다. 여느 여성 연주자들과 달리 질끈 묶은 머리에 새카만 턱시도를 입고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우아하게 그려냈다.

그가 다음 달 7일 서울에서 지휘자 크리스토프 포펜(63)이 이끄는 쾰른 체임버 오케스트라와 함께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9번, 쇼팽 피아노 협주곡 2번을 협연한다. 1923년 창단한 쾰른 체임버는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실내악단이자 25명 안팎의 단원이 한 몸처럼 만들어내는 하모니가 일품인 '작은' 오케스트라다.

"다음 무대가 크리스마스처럼 기다려진다"는 율리아나 아브제예바. "콩쿠르에서 우승하고 나서 습관처럼 연주를 대하게 될까 봐 몹시 경계했는데, 쇼팽을 하면 할수록 그에게 큰 영향을 준 바흐와 모차르트가 튀어나와 행복한 비명을 질러요."

세 번째 내한을 앞두고 지난 22일 일본 도쿄에서 전화를 받은 아브제예바는 "음악 앞에서 난 여자도 남자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솔직히 말하면 저도 가끔은 동화 속 공주처럼 풍성한 드레스를 입고 싶어요. 하지만 관객들은 제가 입은 멋진 드레스가 아니라 음악 그 자체를 보려고 오는 거니까!" 야무진 손끝으로 건반 위를 거침없이 누비는 스타일답게 말이 무척 빨랐다.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태어나 다섯 살 때부터 그네신 음악학교에서 피아노를 배웠다. 열아홉 살 때 스위스로 유학 가 취리히 예술대를 졸업, 다시 이탈리아 코모의 아카데미에서 다수의 마스터클래스를 섭렵했다. "좋은 학교를 두루 다녔지만, 지금의 날 만든 건 매주 바뀐 대가(大家)들한테서 받았던 수만 가지 서로 다른 가르침이었다"고 했다. "시행착오를 거치느라 시간은 좀 걸렸지만 다양한 연주법을 흡수할 수 있었죠." '쇼팽 콩쿠르 우승자'라는 타이틀 덕분에 연주 기회가 쏟아졌지만 횟수를 갑자기 늘리지도 않았다. "오히려 이전보다 더 열심히 동료들 연주를 보러 다녔어요. 우승 한 번으로 실력을 인정받았다는 착각에 빠질까 봐 겁이 났어요. 어제보다 나은 내가 되려면 스스로를 채찍질해야 했지요." 2015년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한 조성진에 대해선 "영롱한 소리가 일품"이라고 했다.

그사이 아브제예바는 잘츠부르크 페스티벌과 루체른 페스티벌에 섰고, 2015년에는 도이치 그라모폰을 통해 쇼팽 콩쿠르가 가장 뛰어난 수상자에게 헌정하는 컬렉션에 뽑혀 솔로 음반을 녹음했다. 최근엔 바흐 음반도 냈다. 취미는 등산과 체스. 수화기 너머로 그가 활짝 웃었다. "20세기 러시아 작곡가 프로코피예프가 여섯 살부터 체스를 배워 훗날 세계 챔피언이었던 호세 라울 카파블랑카와 겨뤘던 걸 아세요?" 언젠가 에베레스트산을 오르는 게 목표라는 그는 "지나치게 호기심 많고, 쳐야 할 곡은 너무 많아 갈 길이 멀지만 멈추지 않고 한 발 한 발 내딛는 게 나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율리아나 아브제예바&쾰른 체임버 오케스트라=3월7일 오후 8시 롯데콘서트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