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정 경제부 차장

"한 30명쯤 몰려옵니다. 강당에 책상을 두 줄로 쫙 펴 드리죠. 어떤 부분만 집중적으로 보겠다, 뭐 이런 게 아니라 그냥 전부 다 탈탈 털어요. 어떤 기업에 얼마를 어떤 조건으로 왜 대출해줬는지 한 2년치를 전부 털어보는 식이죠. 이거 받는 동안 정상적인 영업이 됐겠습니까?"

지난 20일 금융감독원이 금융사들에 대한 '종합검사' 제도를 4년 만에 부활시키겠다고 하자, 금융인들은 저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종합검사의 악몽을 떠올렸다. "검사 나온 인력이 한 달간 자리 잡고 최근 몇 년간 회의록 일체, 결재 문서 전부를 내라는 식으로 요구하는 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 "전부 뒤지고도 원래 생각했던 내용이 안 나오면 검찰처럼 별건(別件)을 들이밀면서 '협박'하는 경우도 있었지요."

2015년 금감원이 지난 50여년간 금융기관을 관리·감독하는 방편이었던 종합검사 폐지를 선언한 데는 이런 부작용이 심각했기 때문이다. 시시콜콜 경영에 간섭하거나 때로 말 안 듣는 회사를 겁박하는 수단으로 변질한 제도를 대폭 손봐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했다.

폐지에서 부활까지 4년 새 금융시장 상황이 크게 변한 건 없다. 정권과 금감원장만 바뀌었을 뿐이다. 우려가 나오자 "예전처럼 별일 없어도 정기적으로 모든 회사에 나갔던 그런 검사는 안 한다, 저인망·백화점식 조사도 없을 것이다. 평가 기준 미달인 곳만 예고하고 검사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하지만 시장은 그다지 믿지 않는 눈치다. 벌써 1번 타자는 삼성생명일 것이라는 소문이 기정사실처럼 돌고 있다. 지난해 즉시연금 미지급금을 소비자에게 주라는 금감원 권고를 따르지 않고 소비자에게 소송을 내 금감원 위상에 상처를 입혔기 때문이다.

금융사에 대한 감독 당국의 검사 기능은 물론 있어야 한다. 대형 은행들의 낯 뜨거운 채용 비리 사태, 삼성증권의 황당한 배당 오류 사고, P2P 업계에서 불거진 투자금 횡령·사기 사건 등은 사안별로 잘못을 가려내 엄격하게 책임을 물리면 된다. 하지만 윤석헌 금감원장이 취임한 이후 금감원의 종합검사가 없어서 금융 감독 시스템의 실패를 드러낸 금융 사건은 없었다. 오히려 "일단 검사 나오면 어쨌든 '성과'를 내야 하기 때문에 억지로 꼬투리 잡는 '검사를 위한 검사'가 될 가능성이 크다" "소비자 보호를 명분으로 내세워 민원이 많거나 대중의 관심이 많은 사안 위주로 손보고, 이에 따르지 않으면 적폐로 몰 것"이라는 금융계의 걱정이 더 호소력 있게 들린다.

대통령은 '금융 규제 샌드박스법(금융혁신지원특별법)'을 만들어 규제를 철폐하자고 하는데, 금감원은 관치 시대의 종합검사를 부활하고 있다. 가속 페달과 브레이크를 동시에 밟은 게 한두 번이 아니지만, 이런 식으로 '한국 금융'이 라는 자동차를 앞으로 굴러가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