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박상훈

"정 교수 부인이 암이래."

함께 점심을 먹던 영문과 최 교수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정 교수라면 그보다 7년 늦게 임용된 행정학과 정규철 교수를 말하는 것일 터. 정규철 교수와 그는 동갑인지라 학교에서 보면 꽤 반갑게 인사하곤 했다.

"부인이 몇 년생인데?"

"정 교수랑 동갑이지 뭐. 1968년생."

"허, 거참."

정규철 교수가 얼마나 어렵게 학위 공부를 한 후 대학교에 자리를 잡게 되었는지, 알 만한 사람은 다 알았다. 가난한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나 남들보다 늦게 대학에 들어갔고, 또 거기에서 학생운동을 하다가 잠깐 구속된 전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이후 낮에는 출판사를 다니면서 계속 대학원에 다녔고, 나중엔 그의 아내가 보험회사 세일즈를 하면서 뒷바라지를 했다고 들었다. 정 교수의 아내는 남편이 학교에 자리를 잡고 나서도 몇 년 더 보험회사 일을 놓지 않았는데, 그래서 그와 몇몇 교수도 암보험과 실손보험 같은 것을 들어주기도 했다. 작년인가, 정 교수가 대출을 많이 받긴 했지만 난생처음 자기 명의의 아파트를 구입했다고, 쑥스럽게 말하는 것을 들은 기억도 있었다.

"정 교수가 얼마 전에 부인이랑 처음으로 도쿄에 갔다 왔는데 그것도 다 그거 때문이래."

"도쿄는 왜?"

"신혼여행도 못 가봤는데, 그래도 어디 외국에라도 꼭 가고 싶다고 해서…."

"거, 환자한테 비행기 타는 게 안 좋을 텐데…."

최 교수와 헤어져 자신의 연구실로 돌아온 그는 제일 먼저 근처 종합병원 건강검진센터를 검색했다. 덜컥, 겁이 났던 것이다. 자신이야 학교에서 매년 의무적으로 건강검진을 받지만, 아내는 그렇지 않았다. 아내의 나이는 이제 우리 나이로 정확히 50. 장모님도, 처이모도 암 투병 병력을 가지고 있었던지라 아내 역시 조심해야 한다는 말을 처남에게 들은 기억이 있었다. 가뜩이나 요새 아내 혈색도 안 좋아 보이고 살도 더 빠진 것 같았는데…. 그는 가장 고가의 검진 코스를 선택했다. 그것이 자신의 사랑의 크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검진 날 오전, 그는 아내와 함께 병원까지 동행했다. 아내는 전날까지도 취소하면 안 되느냐고, 자기는 아픈 곳 없다고 계속 말했지만, 그의 고집을 꺾을 순 없었다. 검진은 기본 신체계측에서부터 시작해서 혈액과 흉부 엑스선, 복부 초음파 순으로 이어졌는데, 그때마다 그는 진료실 밖 복도 대기석에 앉아 기다렸다. 깜빡하고 아무런 책도 들고 오지 않은 것이 그를 조금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는 말 그대로 활자중독증을 지닌 사람이었다. 그는 남들처럼 TV도 보지 않았고, 인터넷 뉴스를 들여다보느라 시간 낭비도 하지 않았다. 가끔 동료 교수들과 점심은 함께 먹었지만 따로 저녁 약속을 잡는 법은 없었다. 늘 제시간에 퇴근해서 가족과 함께 저녁을 먹은 후, 서재에 들어가는 것. 그것이 그를 평안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는 책을 통해서 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고 믿었고, 인생의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다고 확신했으며, 더불어 사랑 또한 배울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는 플라톤과 랭보와 줄리아 크리스테바의 저작을 읽으면서 사랑이란 충만이 아닌 결핍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그것이 행복이 아닌 고통이라는 것 역시 알게 되었다. 그는 그런 시선으로 아내를, 타인을 바라보고 해석하고자 노력했다. 때때로 그는 아내를 보면서 눈살을 찌푸릴 때도 있었는데, 그건 아내의 속물적 욕망을 마주할 때였다. 여러 책의 저자들이 말한 것처럼, 그건 그냥 타인의 욕망을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니까. 그는 그 모습이 어쩐지 게을러 보이기까지 했다.

검진은 오후 늦게 끝났다. 그는 아내를 조수석에 태우고 집으로 향했다. 한참을 아무 말 없이 앞 유리창만 바라보고 있던 아내가 불쑥 물었다.

"겁나요?"

"뭐가요?"

그는 아내에겐 항상 존댓말을 썼다.

"내가 암에 걸렸을까 봐 겁나느냐고요?"

아내는 차분한 목소리로 계속 물었다.

"겁나죠. 그럼 우리 삶이 많이 변하게 될 테니까요…."

아내는 그의 말에 한동안 대답을 하지 않았다. 차 안에는 조용한 클래식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집에 거의 도착했을 때쯤, 그의 아내가 말했다.

"나는 당신이 겁내지 말고 화를 냈으면 좋겠어요."

아내는 그 말을 끝으로 다시 침묵을 지켰다. 그는 아내가 무슨 뜻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 고민해 보았지만 좀처럼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그 말은 책에서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내의 검진 결과가 나오기 하루 전날, 그는 학교 복도에서 우연히 정 교수를 만났다.

"정 교수, 최 교수한테서 소식 전해 들었어요. 사모님이…."

"최 교수도 참…. 네, 암이래요. 유방암 3기."

정 교수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거, 고생이 많으시겠네요."

그는 최대한 예의를 갖춰 말했다.

"고생은요, 뭘. 고생이야 늘 하던 거고, 달라진 것도 별로 없습니다."

"그래도 병간호라는 게, 그게 보통 일이 아닐 텐데…."

"그냥 아내와 함께 대화하는 시간이 좀 부족해서 화가 날 뿐이지, 뭐 다른 건 없어요."

정 교수는 그 말을 끝으로 인사를 한 후 가던 길을 갔다. 그는 멀어져 가는 정 교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한참 동안 서 있었다. 그는 정 교수의 말도 무슨 뜻인지 잘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왜 아픈 사람 힘들게 굳이 말을 하려고 하는 거지? 그는 골똘히 그 말을 생각했으나 답을 찾을 순 없었다. 오후가 저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