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7일 MBC 라디오 '시선집중'에서 진행자 심인보는 "최저임금 보도할 때는 소상공인 걱정해주는 것처럼 하더니, 왜 중소 상공인에 도움되는 제로페이는 '안되라, 안되라' 하냐 이거죠"라고 물었다. 출연자인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이 "신용카드 성장할 때도 관치(官治)가 많이 들어갔다"면서 정부를 옹호하자, 진행자는 '라디오 들으며 제로페이 등록했다'는 청취자 문자를 소개했다. 같은 달 7일엔 박원순 서울시장이 이 프로에 출연해 '제로페이'에 대한 입장을 설명했다. 여권의 유력 정치인과 친여 성향의 진행자, 시민단체 대표가 합세해 정책 홍보를 편 것이다.

이날뿐 아니다. 최저임금이나 소득 주도 성장 같은 현 정부 정책이나 여야 갈등 사안이 터질 때마다 주요 라디오 시사 프로 출연자들은 대부분 정부 편을 들었다. 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의 '박근혜-문재인 정부 시기 지상파 시사 프로그램 평가 연구'에서 라디오 시사 프로 출연자들이 현재 여당을 지지하는 성향을 '-2(분명하게 비판적)~2(분명하게 우호적)'까지 5단계로 분석한 결과, 지난 정부 때부터 존재하던 지지 성향이 현 정부에서 두 배 이상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여당에 치우친 출연자들

여당 측 출연자들은 여당 정치인과 시민 단체, 좌파 매체 기자들로 구성된 고정 출연자와 한 달 4회 이상 나오는 단골 출연자들까지 동원해 양적 공세를 폈다. 본지가 지난 1월 한 달간 KBS·MBC· CBS·TBS라디오 아침 시사 프로에 출연한 정치인들의 출연 횟수를 집계한 결과, 총 116회 중 더불어민주당 소속이 55회, 자유한국당 20회, 정의당 15회, 바른미래당 14회, 민주평화당 14회 등으로 나타났다. 절반에 달하는 여당 출연자들을 포함해 범여권 인사들의 출연 횟수는 전체의 70%에 달했다. 방송심의규정이 요구하는 찬반 패널을 공정하게 구성한다는 원칙도 거의 지켜지지 않았다.

국민 정서에 비춰 받아들이기 어려운 목소리도 전파를 탔다. 작년 7월 김재연 전 통진당 의원은 KBS '최강시사'에 출연해 "감옥에 있어야 할 사람은 이석기가 아니라 양승태"라고 발언했다. 작년 6월엔 "대한항공 858기 폭파 사건 주범은 김현희가 아니라 전두환이며, 두 사람을 모두 법정에 세워야 한다"는 좌파 단체 관계자 인터뷰가 나왔다.

야당을 놀림감으로 삼는 건 고정 레퍼토리다. 작년 11월 28일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한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당시 국회에서 이슈가 된 '한 부모 가족 지원 예산 삭감' 논란과 관련 "이때까지 계속 삐뚤어진 삶을 살아왔던 정당(야당을 지칭)한테 어떻게 하겠냐"고 했다.

정치인뿐 아니다. 나꼼수 출신 주진우 시사인 기자도 단골 출연자다. 그는 지난달 21일부터 나흘 동안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내리 출연했고, 같은 달 11일엔 역시 나꼼수 출신이 진행하는 KBS '김용민 라이브'에 출연해 정부 옹호 발언을 이어갔다.

제1 야당은 구색 맞추기 출연

문재인 정부 들어 라디오 시사 프로에 '정치 논쟁적 사안'이 급증한 것도 새로운 특징이다. 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에 따르면, 박 정부 때 전체 시사 라디오 소재의 절반가량이던 '비(非)정치 사안'은 문 정부 들어 32%로 감소한 반면, 여야·여타 논쟁적 사안은 53%에서 68%로 증가했다. 연구진은 "정치 논쟁 아이템의 증가는 민주당 출신 출연자의 급증과 맞물려 강한 편향성으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제1 야당 출연자들은 사실상 구색 맞추기라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달 18일 '뉴스공장'에 출연한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진행자 김어준이 손혜원 의원 입장을 반복하며 이야기를 이끌어가자, "자꾸 그렇게 유도하시니까 편파 방송이란 이야기를 듣죠"라며 불만을 표시했다. 김어준은 야당 원내대표의 항의에 아랑곳없이 "다음에도 꼭 나와 달라"는 식으로 인터뷰를 끝냈다. 이용률 32.1%에 달하고, 이용자 평균 하루 56분씩 듣는 라디오 매체를 사실상 친여(親與) 성향 '스피커'들이 차지하면서 청취자들 사이에선 "채널은 다양한데 어디를 돌려도 똑같은 소리만 나온다"는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