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오르그 레무스, 세상이 가는 길, 1620년, 뉘른베르크 시청 '위대한 방'의 엠블럼 삽화본, 종이에 동판화, 높이 20㎝, 시카고 뉴베리 도서관 소장.

가재가 지구를 등에 업었다. 제목은 ‘세상이 가는 길(Sic Orbis iter).’ 세상이 어째서 가재의 등에 얹혀서 가는가. 가재는 똑바로 나아가지 못하고 총총히 뒤로 물러나며 걷는데 말이다. 하지만 그러고 보니, 세상이 완벽하게 앞으로만 나아간 적은 없다.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을 향해 진일보하기 위해서는 갈등과 충돌, 고난과 퇴보를 거치는 힘겨운 길을 사회 전체가 함께 감내해야 한다. 이처럼 그림 한 장과 짧은 문구로 이뤄진 엠블럼 한 페이지가 개인뿐 아니라 사회의 구성원 모두에게 날카로운 깨달음을 준다.

오늘날 '엠블럼'이라고 하면 대부분 학교나 스포츠팀의 문장(紋章)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16세기 초 유럽에 등장해 1800년경까지 전성기를 누렸던 엠블럼은 짧은 표제, 상징적 이미지, 그리고 설명문의 세 부분이 모여 삶의 지혜나 도덕적 교훈, 종교의 가르침을 드러내는 문학의 한 장르였다. 오늘날 우리가 엠블럼 하나로 해당 단체를 알아보듯, 당대의 교양인이라면 짧고도 명료한 엠블럼의 메시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세상이 가는 길’은 1620년 독일 뉘른베르크에서 발행된 ‘엠블럼 삽화본’의 한 페이지다. 법률가이자 작가였던 게오르그 레무스(Georg Remus·1561 ~1625)가 뉘른베르크 시청의 ‘위대한 방’을 장식한 많은 엠블럼에 감명을 받아 이를 책으로 엮어냈다. 설명문의 마지막 문장은 종교개혁의 중심지로 오랜 투쟁 끝에 자유와 번영을 이루어낸 도시, 뉘른베르크의 시민들이 깨달은 세상의 이치이자 의지를 담았다. ‘무엇을 소망하든, 인내하라. 결국은 도달할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