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엘리트 체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현장의 체육기자들과 체육학자들이 머리를 맞댔다.

지난 8일 오전 10시30분 서울 연세대 스포츠과학관에서 사단법인 한국스포츠미디어학회가 한국체육기자연맹, 한국여성체육학회, 한국여성스포츠회, 한국정책학회 등과 공동 개최한 '체육계 개혁을 위한 스포츠와 미디어의 재검토' 세미나의 열기는 뜨거웠다. 오후 1시30분까지 3시간 동안 이어진 세미나는 유상건 상명대 스포츠ICT융합학과 교수의 '스포츠 저널리즘의 재구성', 권종오 SBS 스포츠부장의 '한국스포츠, 인권의 사각지대인가', 정재용 KBS 취재부장의 '스포츠개혁은 근본적인 대책은 존재하나', 원영신 한국스포츠미디어학회장은 '체육계 개혁을 위한 여성 체육의 확장'을 주제로 각각 발표했다.

발제 후 조미혜 한국여성체육학회 회장,이용식 한국체육학회 부회장, 임신자 한국여성스포츠회 회장, 이재구 한국체육정책학회 회장의 토론이 이어졌다.

▶발제: 체육계 개혁 어떻게 할 것인가

첫번째 발제에 나선 유상건 상명대 교수는 체육계 혁신이 절실한 시대, 스포츠 저널리즘의 기본을 짚었다. '퀄리티 저널리즘'을 위해 정확성, 심층보도, 불편부당성, 탐사보도, 글쓰기 능력 등을 강조했다.

권종오 SBS 스포츠부장은 엘리트 스포츠에서 감독이 선수에 대해 전권을 쥐고 있는 주종관계, 대한체육회 행정의 문제점을 냉철하게 비판했다. 대한체육회가 폭력, 성폭력 사건 신고시 해당 건을 경기단체로 다시 내리는 제도, 그릇된 온정주의로 인해 제대로 된 처벌도 신고도 이뤄지지 않는 침묵의 카르텔을 지적했다. 또 선수 인권 담당 부서장이 2014년 이후 4년간 무려 7명이나 바뀐 사실을 지적하면서 전문성 부재와 인권 담당부서를 한직으로 생각하는 분위기에서 무엇이 제대로 이뤄지겠느냐고 반문했다.

심석희 미투 사건 이후 정부가 내놓은 성급한 대책도 비판했다. "1966년 태릉선수촌 개촌 이후 53년 이어져온 엘리트체육의 근간을 모두 허무는 대책이었다. 아무말 없다가 심석희 선수가 성폭력을 당했다고 폭로한지 17일만에, 이런 중요한 이야기를 한꺼번에 내놨다. 대책대로라면 진천선수촌도 필요없고, 엘리트 체육은 없어져야 한다. 올림픽 메달도 필요없다. 엄청난 이야기를 너무 쉽게 했다"고 봤다. "대책을 발표한 사람들은 모두 정치인들이다. 과연 1월 25일 정부 발표가 앞으로 제대로 진행될까. 일본은 내년 도쿄올림픽에서 금메달 30개 이상을 공언하고 있다"면서 "대한체육회와 경기단체도 각성해야하지만 정부가 좀더 체육에 대한 애정을 갖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시간이 걸리더라도 제대로 연구해서 대책을 발표했으면 한다"는 의견을 전했다.

정재용 KBS 부장은 "2008년에도 스포츠계 성폭력 문제가 이슈가 됐고 11년이 지난 오늘 이렇게 반복되는 것이 안타깝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근본적인 해법으로 학교체육의 정상화를 주장했다. "모든 문제는 학교체육을 왜곡한 데서 시작됐다. 공부를 하지 않아도 대학을 갈 수 있게 했다. 병역특례, 체육연금 등 엘리트 스포츠 시스템을 만들었고, 그 시스템이 지금까지 유지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체부와 교육부는 대한체육회에 연 3000억원 이상을 주면서 학생선수를 맡겨왔다. 대한체육회는 출발부터 올림픽 금메달을 따야 하는 조직이다. 학생들의 교육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우리나라 학생들은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지 않아도 된다. 전체 1%의 학생선수들은 운동기계, 전체 99%의 일반학생은 공부기계, 100%가 왜곡된 학교체육 시스템의 피해자"라고 진단했다. 근본적 해법으로 "학교체육진흥회를 통한 학교스포츠클럽 활성화"를 주창했다. "학교체육진흥법을 통해 엘리트 선수들은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고, 일반학생은 학교 스포츠클럽에 참여하는 방식을 10년 이상 추진해야 한다. 분명 시간이 걸린다. 지속적으로 밀고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지막 발제에 나선 원영신 한국스포츠미디어학회장은 "스포츠의 가치,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면서 "체육 개혁 대책을 내놓은 분들이 평소 스포츠에 얼마나 애정을 갖고 있는지 묻고 싶다"고 했다. 원 회장은 "지난해 정부의 스포츠비전 2030에도 언급된 스포츠기본법의 제정 및 조속한 이행"을 촉구했다. "미성년 선수에 대한 성폭행은 개인의 삶을 파괴하는 살인인 만큼 미국 체조대표팀 주치의 래리 나사르에게 징역 175년형이 선고됐듯이 매우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 여성체육인, 지도자들을 주요 보직에 적극 활용할 것을 제안했다. "현재 체육계 여성 임원의 비율은 10% 내외에 불과하다"면서 "의사결정권이 있는 지위에, 여성 임원 30% '권장'한다는 조항을 '의무화'한다로 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토론: "여성 체육 임원 및 지도자 30% 의무화"

발제에 이어 곧바로 이어진 토론에서 이용식 한국체육학회장은 "현재 엘리트체육 시스템은 1970년대 박정희, 군부정권이 동구권 소련 시스템 받아들인 것"이라고 전제했다. "1970년대 군부 시스템을 그대로 갖고 가야하나"라고 반문한 후 "엘리트 체육을 없애자는 것이 아니라 방식을 바꾸자는데 왜 반대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체육개혁을 위한 3가지 해법을 제시했다. "첫째, 체육특기자 제도를 만든 것은 교육부다. 이번 사태 큰책임자는 교육부다. 체육특기자 만들어 공부 안해도 된다고 한 것이다. 교육부가 해결책을 내놓으면 50%는 해결된다"고 했다. "둘째 문체부가 바뀌어야 한다. 대한체육회는 문체부 산하다. 대한체육회가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 둔 것"이라고 덧붙였다. "셋째, 여성 운동부 지도자는 가급적 여성감독, 코치들이 해야 한다. 남성 지도자의 경우 여성관리감독관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태권도 선수 출신인 임신자 한국여성스포츠회 회장 역시 여성 체육인들을 현장에서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체육지도자의 여성 할당제를 법제화해야 한다. 역대 아시안게임, 올림픽 메달리스트 중 여성의 비율을 45%다. 태권도 국가대표팀에 여성코치를 배출하는 데 10년이 걸렸다.체육단체에 여성 비율 30% 이상을 의무화해야 한다. 여성심판은 50%까지 늘려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재구 한국체육정책학회장은 스포츠기본법 제정, 체육청 등 체육 전담 정부기관 설립 등과 함께 정부의 체육 예산을 5조 원까지 끌어올릴 것을 제안했다. 이 회장은 "정부 예산 490조원 중 체육예산은 2조원이 채 안된다. 정부예산이 7% 늘었지만 체육예산을 거꾸로 간다. 개혁을 위해 필요한 좋은 제도들이 예산의 뒷받침 없이 이뤄질 수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현재 0.4% 수준인 체육예산을 1% 수준, 5조원까지는 끌어올려야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래야 체육이 갈 길과 살 길이 잡힌다고 주장했다.

수영선수 출신인 조미혜 여성체육학회장은 "인간답게 살 권리, 차별받지 않을 권리 ,행복하게 살 권리"를 주창하면서 "인권 침해는 사회적 약자에게 발생한다. 여성 체육인은 사회적 약자다. 양성평등, 동등한 권리를 인정받을 때까지 갈 것"이라며 여성 체육인들의 연대를 주창했다. 또다른 성폭력 피해자가 없는지 전수조사를 통해 범죄자를 색출, 엄벌하고 이를 묵인, 은폐한 관리 감독자도 철저히 징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여성 체육 지도자 30% 이상을 의무화해야 한다. 스포츠 강국 목표를 버리고, 인권친화적인 패러다임을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원로 체육인들 "엘리트 체육은 엘리트 체육대로 키워가야"

기존의 엘리트 체육 시스템을 급격하게 바꾸려는 움직임에 대해 방청석의 원로 체육인 겸 행정가들은 반대 의견을 분명히 했다. 방열 대한민국농구협회장은 "중학교 1학년때부터 지금까지 스포츠계에 종사하고 있다. 1970년대 체육특기생은 1년 내내 각 신문사 대회를 나가던 고교 야구에서 유래했다. 5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공부하라고 만든 법이 공부 안하는 법이 됐다"고 과거를 돌아봤다. "학원 스포츠는 클럽 스포츠 때문에 망했다"는 말로 종목별 형편에 맞는 엘리트 스포츠 정책을 주장하는 한편 '공부하는 선수' 정책에 찬성의 뜻도 분명히 했다. "등교해서, 잠을 자더라도 그 시간에 맞춰 수업에 들어가야 한다. 그런 사람이 선수생활을 할 때 폭력도 사라진다. 그런 가운데 학원 스포츠 강화를 주장하고 싶다"고 말했다. 정동구 전 한체대 총장은 "나는 1960년대 배구 선수, 1970년대 국가대표 코치를 했고, 한체대에서 정년을 마쳤다. 지금은 대학생 해외봉사단 활동을 25년째 함께하고 있다. 스포츠를 해서 에너지 있게 살아갈 수 있다는 점에 감사한다"며 입을 열었다. "체육은 국가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우리나라가 분단됐고, 전쟁을 치렀고, 세계에 알릴 만한 것이 없을 때 대한민국을 알린 것이 스포츠였다"며 체육인으로서의 자부심을 강조했다. "지금은 과소평가하지만 70-80년대, 코리아는 대단했다. 서울 올림픽도 했고 스포츠는 그 시대에 맞는 사명을 다했다. 함부로 그렇게 막 이야기하면 안된다. 체육이 정당한 몫의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슈가 생겼을 때 뭉쳐야 하고 필요하면 돈도 내야 한다"며 체육인의 단결을 호소했다.

평생을 여성 체육인, 체육행정가로 살아온 홍양자 전 이화여대 학장은 "소 잃고 외양간을 부순다"며 엘리트체육의 근간을 흔드는 정책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세계배구연맹 첫 여성 부회장 출신으로 일본 가와사키대에서 교수로 일해온 홍 전 학장은 "자꾸 일본, 미국과 비교하는데 2019년 2월 한국 인구는 5181만 1167명… 인구 6000만도 안되는 나라가 선택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세계에 우리를 알릴 수 없다"고 현실을 짚었다. "누가 올림픽 메달 따라고 했나식의 비하 발언을 들을 때 참담한 느낌이 든다. 엘리트스포츠는 엘리트스포츠대로 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미국 같은 큰나라와 똑같은 시스템으로 선수를 기르고 교육을 시킬 수 있는지 묻고 싶다. 우리는 우리나라식으로 해야 한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가와사키대, 홋카이도에서도 엘리트는 엘리트대로 선수를 기르고 있다"고 말했다. "10살 나카무라 스미레 초단이 최정 9단과 대국하는 것을 보았다. 영재, 엘리트는 엘리트대로 키워주고, 학교에서 원하는 이들은 취미로 바둑을 두면 된다. 미국은 되는데 한국은 왜 안되나, 그건 전혀 다른 문제"라고 일갈했다. "체육인들이 살아남아야 한다. 참담한 기분이다. 엘리트 스포츠가 더욱더 잘되기를 바란다"며 후배들에게 힘을 실었다. 연세대=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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