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이종 서울대 중앙도서관장(사회학과 교수)

민주사회에서 노동자들의 임금 투쟁은 어디서나 어느 조직에서나 있을 수 있다. 노동자의 권익이 열악하고 또 임금 수준이 낮은 중소기업에서는 특히 그렇다. 서울대학교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해 초 정규직 전환 방침에 따라 정규직으로 전환된 시설관리직 노조가 파업할 수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럼에도 사회학적 상식으로 '설마 우리 도서관까지는 하지 않겠지'라는 일말의 기대를 가졌다. 하지만 지난 7일 오후 기대는 여지없이 깨져 버렸다. 직원들과 함께 황급히 중앙도서관 기계실로 내려가 "어떻게 도서관 난방을 볼모로 파업할 수 있느냐"고 거칠게 항의했지만 "노조의 결정"이라는 답변뿐이었다. "학생들의 불만이 커져서 파업에 대한 여론이 악화할 것"이라는 말에는 "총학생회 동의를 받았다"고 답했다. 그러나 이날 도서관을 찾은 총학생회장은 "그런 일이 없으며 노조위원장을 만나서 호소하겠다"고 했다.

어안이 벙벙했다. 아무리 '내 몫 찾기' 임금 투쟁이라 하더라도 우리 공동체를 위해서 꼭 지켜야 할 '금기'라는 것은 있지 않을까 하는 건 소박한 기대에 그쳤다. 아무리 힘들더라도 병원 파업에서 응급실을 폐쇄해 타인의 생명을 빼앗는 행위는 금기이듯이, 대학 파업에서도 우리 공동체를 이끌 미래 인재들의 공부와 연구를 직접 방해하는 행위는 금기가 아닐까. 도서관과 연구실의 난방마저 볼모로 임금 투쟁하는 이번 서울대 파업은 우리 사회의 이런 금기마저 짓밟는 초유의 사건으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이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는 법적으로 강제된 몇몇 곳 이외 어느 시설, 어느 이용자든 볼모로 인질로 잡는 것을 저어하지 않을 것이다. 내 임금 투쟁을 위해서는 그 어느 곳이든 '가장 중요한 곳을 마비시키는 것이 가장 현명한 파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소한의 금기마저 짓밟는 파업은 역풍에 부딪힐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열악한 노동 환경에서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위해 싸워 왔던 민주노총의 긍정적인 역할마저 폄하받고 국민의 저항이 만만찮기 때문이다. "공부하는 학생을 인질로 파업하는 행위는 너무나 치졸한 행위이다. 민노총 노답이다." "손 시려 글씨도 잘 안 써지잖아… 추위에 떤 학생들이 뭔 죕니까? 노조 파업 너무하네. 민노총은 사회악이야." "자신들의 목적 달성을 위해 학생들의 학업 방해를 선택한 것 최악의 선택이다. 인질극하고 다를 게 무엇인가요?"

이런 볼모는 젊은 세대들에게 너무 잔인하다. 우리 사회는 천정부지 높아가는 집값으로 꽃다운 젊은이들이 연애도 결혼도 자녀도 포기한 지 오래고, 날로 악화하는 청년 실업 속에서 서울대 학생조차도 취업 준비로 밤낮을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되는 냉혹한 현실이라는 사실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젊은이들이 공부하는 도서관과 연구실마저 내 몫 챙기기의 볼모로 전락하는 잔인한 현실이라면 그야말로 젊은이들이 되뇌는 진짜 헬조선의 끝판왕이 아닐까? 날로 높아가는 구조적 불평등의 벽 앞에서 노력만 해서도 안 되는데, 기성세대 꼰대들이 '노오오력'하라고 하더니 이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공부하고 연구하는 곳마저 저당 잡힌다면 세대 갈등뿐만 아니라 다가올 정치적 후폭풍마저 두렵다.

최소 30년 이상 우리 사회를 이끌고 갈 학생들의 공부와 연구를 볼모로 임금 투쟁하는 나라에는 미래가 없다. 제아무리 4차 산업혁명을 외치고 미래 먹거리 산업을 찾고 일자리를 창출하려고 수조원을 쏟아붓는다 한들 인재를 소중히 여길 줄 모르는 나라의 미래는 없다. 밤낮으로 공부하고 '월화수목금금금' 연구하는 도서관과 연구실의 난방을 볼모로 하는 이번 서울대 파업은 암울한 대한민국의 미래를 그대로 보여준다. 다시 한 번 묻고 싶다. 세계 어느 나라에 그 나라의 미래 인재를 양성하는 대학의 핵심 시설인 도서관과 연구실의 난방을 끄고 바리케이드를 치고 임금 투쟁하는 나라가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