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5월 13일 미국 남부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북쪽의 스파턴버그 카운티에서 아시아계 여성의 시신이 발견됐다. 시신에선 묶였던 흔적이 나왔고, 사인은 호흡 부족이었다. 그러나 이 여성이 누구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넉 달여가 지난 같은 해 9월 25일 노스캐롤라이나주 미베인의 한 고속도로변에서 남자아이의 시신을 발견됐다. 시신은 발견 당시 이미 백골화가 진행된 상태였다. 사인은 목 졸림으로 추정됐다.

수사 당국은 소년의 몽타주를 만들어 미 전역에 뿌리는 등 수사를 확대했지만 신원조차 확인하지 못했다. 이 사건은 남자아이의 시신이 광고판 아래에서 발견됐다는 이유로 '광고판 아래 소년'(Boy Under the Billboard)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장기 미제사건이 됐다.

당시 다른 곳에서 발견된 두 구의 시신은 전혀 연관성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두 사건 현장은 200마일(약 320km) 이상 떨어져 있었고, 모두 신원도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건이 일어난 지 21년 만에 두 시신이 재미 한국인 여성과 아들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고 6일(현지 시각) 워싱턴포스트와 AP통신 등 현지 언론이 보도했다. 놀랍게도 이 모자(母子)를 살해한 범인은 여성의 백인 남편이었다. 남편은 친척들에게는 이들 모자가 한국으로 돌아갔다고 거짓말을 하면서 범행을 숨겨왔다.

사건의 진실을 밝힌 것은 21년간 끈질지게 수사를 해온 노스캐롤라이나 오렌지카운티 수사관 팀 혼이었다.

로버트 바비 아담 휘트(왼쪽)과 어머니인 한국인 조명화씨의 모습

보도에 따르면 이 사건은 혼이 지난해 12월 남자아이의 시신에서 채취한 유전자(DNA) 샘플을 조사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혼은 1998년 9월 남자아이 시신을 발견한 이후 이 사건을 수사해 왔다.

혼은 최신 유전자 분석기법을 활용해 추적한 결과 남자아이의 신원이 1988년 백인 남성과 한국인 여성 조명화씨 사이에서 태어난 로버트 바비 아담 휘트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사건이 일어난 지 20년 만의 일이었다.

혼은 "나는 항상 이 사건과 관련한 서류들을 내 책상 밑에 뒀다. 내가 몸을 돌릴 때마다 사건 파일이 내 다리를 쳤다"며 "그 소년을 잊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고 말했다.

수사 과정에서 혼은 바비의 친척들을 만났다. 하지만 이들은 바비가 어머니 조씨와 함께 한국으로 돌아갔다고 믿고 있었다. 바비의 사촌인 나탈리 모스텔러는 "내가 19세, 바비가 10세 때 바비의 아버지는 '아내와 헤어졌고, 아내가 바비를 모국인 한국으로 데려갔다'고 했다"며 "나는 성인이 된 후에도 페이스북 등을 통해 바비의 흔적을 찾았지만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1998년 조명화씨의 시신 발견 당시 신원 파악을 위해 뿌려진 전단

이를 석연치 않게 생각한 경찰은 조씨도 숨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같은 해 일어난 살인 사건을 추적했다. 이후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발견된 신원미상 시신의 DNA가 조씨와 일치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경찰은 조씨의 남편을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조사에 나서 지난주 아내와 아들을 살해했다는 자백을 받아냈다. 남편은 1999년 저지른 무장강도 사건으로 연방교도소에 수감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2037년까지 가석방될 수 없는 상태다.

현지 경찰은 살인 사건이 실제로 어디에서 발생했는지는 확실하지 않기 때문에 검사가 기소를 결정할 때까지 남편의 신원을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바비의 고모이자 조씨의 시누이인 바바라 모엘맨은 "조씨는 매우 재밌는 성격을 가지고 있었고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열심히 일했다"며 "내 남동생이 그런 역겹고 패륜적인 일을 저질렀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21년 만에 사건의 전말을 밝혀낸 혼은 "사건이 제대로 풀리지 않을 때마다 여러 단계에서 실망하고 낙담했다"며 "하지만 우리는 끝없이 매달렸고, 마침내 사건을 해결했다"고 말했다. 혼은 지난 1일 은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