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감위⋅상하이증권거래소, '커촹반' 관련 규칙 공개
적자기업 상장 허용 등...2월 20일까지 의견수렴
중국 증시에도 차등의결권이 도입된다. 상하이증권거래소(이하 상하이거래소)가 30일 공개한 커촹반(科創板) 규칙에 특정주식에 많은 수의 의결권을 부여하는 차등의결권 허용 내용이 담겼다. 중국 국무원(중앙정부)이 작년 9월 발표한 혁신기업 육성 정책에서 기술기업에 한해 차등의결권을 인정하는 지배구조를 허용하기로 언급한 이후 이의 실행이 임박한 것이다.
‘상하이판 나스닥’으로 불리는 커촹반 규칙에 대한 공개의견 수렴은 2월20일까지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작년 11월 첫번째 중국 국제수입박람회에서 커촹반 개설을 지시한지 1년도 안돼 개장을 눈 앞에 두고 있는 것이다.
차등의결권 도입은 중국 유니콘(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 비상장기업)들이 해외증시로 몰려가는 것을 막기 위해 작년 4월 홍콩 증시에 도입한데 이어 어 중국 본토 증시에도 커촹반부터 적용하는 것이다.
중국 증권감독관리위원회는 ‘상하이거래소 커촹반 설립 및 등록제 시행의견’을, 상하이거래소는 커촹반 기업공개(IPO) 위탁매매 등 관련 규칙 6건에 대한 공개의견안을 30일 발표했다. 이는 앞서 시진핑 주석이 지난 23일 주재한 중앙 전면 개혁 심화위원회 6차회의에서 통과시킨 ‘상하이거래소 커촹반 설립 및 등록제 전체 시행방안’ 등에 따른 것이다.
30일 공개된 규칙들은 커촹반이 중국 증시의 개혁 시험대라는 평가를 뒷받침한다. 차등의결권 도입 뿐 아니라 IPO 심사비준제를 등록제로 전환하고, 적자기업도 상장할 수 있고, 사상 최고로 엄격한 퇴출제도를 시행하고, 첫 5거래일 주가 제한폭을 없애기로 했다. 홍콩 증시에 상장된 레드칩(중국 자본이 35% 이상 출자한 기업)도 CDR(중국예탁증서) 형태로 교차 상장될 수 있다. 홍콩 증시에 개설한 계좌를 통해 해외 외국인도 투자할 수 있도록 했다.
커촹반의 주요 상장기업 대상도 적시됐다. 차세대정보기술, 첨단장비, 신소재, 신에너지, 에너지절감 환경보호, 바이오의약 등 첨단기술 산업과 전략 신흥산업에서 인터넷 빅데이터 클라우드 인공지능과 제조업의 융합을 통해 중고급 소비와 질량과 효율을 높이는 변혁을 이끄는 기업들이다.
♢경영권 방어제 차등의결권 한국보다 먼저 시행
커촹반에 차등의결권을 도입하는 건 외부의 적대적 인수합병(M&A)을 방어하는 무기인 차등의결권이 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 싱가포르 등 선진국에 이어 중국이 한국보다 앞서 이를 시행함을 의미한다.
차등의결권을 인정하지 않는 한국에서는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벤처기업에 한해 논의하는 단계다. 차등의결권은 창업자 노력의 댓가를 인정한다는 측면이 있지만 참여연대 등으로부터 경제민주화에 역행하는 친(親)재벌 제도라는 이유로 강한 반발에 직면해 있다.
중국이 차등의결권을 허용하기로 한 것은 홍콩이 지난해 차등의결권을 도입한 이후 스마트폰 업체 샤오미(小米)와 음식배달 연결 인터넷 플랫폼 기업인 메이퇀(美團) 등 중국 대표 유니콘의 상장을 잇따라 유치한 것처럼 중국 간판 혁신기업을 자국 증시로 유치하기 위해서다.
차등의결권 있는 홍콩 증시 주식은 중국 투자자들의 '강구퉁(港股通·중국 본토 투자자들의 홍콩시장 투자) ‘거래 대상에서 제외됐지만 올해 중반 이 규제도 풀린다.
중국은 커촹판에 차등의결권을 도입하면서 여러 단서를 다는 등 보완조치를 넣었다. 차등의결권 배정 내용은 주주총회 참석 주주의 3분의 2이상이 찬성해야 통과된다. 상장전 최소 1년(회계연도 기준) 차등의결권 지배구조를 안정적으로 운용해야하는 조건도 붙었다.
보유 주식수보다 더 많은 의결권을 받는 주주는 회사와 업적 성장에 중대한 공헌이 있어야하고 동시에 상장 전후 회사의 임원을 맡고 있어야한다. 특별의결권이 있는 주식은 장내에서 매매할 수 없다. 보통주를 보유한 주주의 합법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의결권 이외 다른 권리는 똑 같다고 적시됐고, 감사회가 특별의결권 남용을 금지하도록 했다.
창업자 등의 도덕적 해이를 막는 장치도 담겨있다. 적자 상태에서 상장한 경우 이익이 나기전에 IPO 전 지분을 파는 게 금지된다. 상장후 5년이 지나면 이 규제에서 벗어난다. 핵심 기술인력의 의무 보호예수 기간을 늘려 상장후 36개월동안은 지분을 팔 수 없도록 했다.
♢상장사 진입 퇴출 문턱 모두 낮춰 상장사 질 제고
상하이거래소는 30일 웹사이트에 올린 기자와의 질의 응답 형식 설명을 통해 "커촹반은 포용적인 상장조건과 엄격한 퇴출제도를 통해 시장의 진출입 통로를 뚫을 것이라고 설명했다.적자 기업도 상장할 수 있도록 한 것과 IPO 심사비준제를 등록제로 대체한 게 포용적 상장조건을 대표한다.
상하이거래소는 상장신청서를 제출한 기업이 커촹반 상장조건과 공시 요구를 충족시키는 지를 보고 의견을 달아 증감위에 보낸다. 증감위는 20일 이내 등록 동의 여부를 통지해줘야한다.
IPO 심사비준제는 증권당국의 부패로 이어져 중국은 이를 등록제로 전환하는 개혁을 추진해왔다. 당초 IPO 등록제는 2015년 시행 예정이었지만 증시 급락으로 늦춰졌고, 작년초에는 증감위에 부여된 자체 시행권한 유효기간이 2020년으로 연장됐다. 등록제 시행은 증시 공급물량(상장사)을 늘려 주가 하락 압력을 높일 수 있어 약세장에서 도입하기 쉽지 않다.
상하이종합지수는 지난해 24.6% 하락해 미국발(發) 글로벌금융위기가 강타한 2008년에 이어 두번째로 큰 하락폭을 보였다. 중국 당국이 악조건에서도 커촹반을 통해 등록제를 우선 시행하기로 한 것은 혁신 민영기업의 활력을 높이기 위해서다. 3500개가 넘는 중국 증시 상장사 가운데 민영기업은 60%를 웃돈다. 중국판 1호 나스닥으로 2009년 선전증권거래소에 개설된 창업판의 경우 신규 상장사의 90%이상이 민영기업이다.
중국 지도부는 미국이 혁신국가로 성장한 배경엔 자본시장의 발전이 있었다고 본다. 은행 중심의 금융구조를 고쳐 직접 금융비중을 높이는쪽으로 방향을 잡은 게 단순한 부채 축소 뿐 아니라 혁신촉진을 위한 것이라는 얘기다.
커촹반은 상장사가 퇴출조건에 부합할 경우 곧바로 퇴출시키기로 했다. 일시 거래중지 뒤 재개 같은 절차를 밟지 못하도록 했다. ‘좀비 상장사’가 생길 여지를 없애겠다는 것이다. 퇴출 기업이 재상장할 경우 별도의 재상장 채널 대신 신규 IPO 등록절차를 밟도록 했다.
최근 중국이 강화한 증시 퇴출 제도에 적시된 중대 공시 위반이나 공공안전을 해치는 위법사항 등은 물론 일정 수준의 재무지표와 거래 지표 등이 커촹반 퇴출 사유에 해당된다. 특히 매출의 주요원천이 주력사업과 무관련 거래에서 나오고 지속경영 능력을 상실했음을 뚜렷히 보여주는 증거가 있을 경우 정해진 절차에 따라 퇴출을 시키기로 했다.
중국은 한국보다 상장사는 많지만 퇴출 상장사는 상대적으로 적다. 우량 상장사가 많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퇴출제도가 미비해 ‘좀비 상장사’가 많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중국 증시가 진입과 퇴출이 활발한 시장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이다.
♢외국인도 홍콩 통해 투자 허용...50만위안 자산 투자자로 제한
거래소측은 커촹반에 상장될 혁신기업의 실적 변동 가능성이 비교적 크고 경영리스크도 높아 일정 수준의 투자경험과 자금실력을 갖춘 투자자만이 투자할 수 있도록 했다고 밝혔다. 증권계좌에 50만위안(약 8000만원) 이상의 자산을 보유해야하고 최근 24개월 이상 증권거래를 한 경험이 있어야한다. 이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개미투자자는 공모펀드 등을 통해 커촹반에 투자할 수 있다.
외국인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 커촹반 상장사에 투자할 수 있다. 중국에 근무하는 외국인은 작년부터 허용된 A주 계좌를 개설해 투자할 수 있다. 동시에 해외에 있는 외국 투자자는 후강퉁과 선강퉁을 통해 홍콩 증시에 개설한 계좌를 이용해 투자할 수 있다.
중국 당국은 합리적인 주가 형성을 촉진하기 위해 첫 5거래일에는 주가 제한폭을 두지 않기로 했다. 현재 중국 증시에선 첫 거래일에만 상하 44%의 주가제한폭이 적용된다. 6거래일째부터 적용되는 주가제한폭도 현재의 2배인 20%로 상향조정된다.
중국은 주가 급변동으로 증시가 혼란을 겪자 1996년 12월 하루 주가 제한폭을 상하 10%로 제한하고, 특별관리 종목의 경우 1998년 4월부터 상하 5%로 제한해오고 있다.
중국 증권업계는 2월중 커촹반 규칙에 대한 공개의견 수렴이 끝나는 걸 감안하면 빠르면 3월 5일 개막하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국회)전체회의 전후로 시행될 것으로 예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