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련님’으로 10년 살았다. 짝을 맺자 ‘서방(書房)님’이 됐다. 두 형수한테 30년 가까이 그 소리 듣건만, 아내의 여동생을 ‘처제(妻弟)’라 부른다. 가족 간 호칭이나 관계가 이렇듯 불평등한 면이 있다. 여성가족부가 앞장서서 뜯어고치고자 한다는데. 오랜 문화의 일부를 이런 식으로 손보는 게 과연 바람직할지. 기왕이면 두루 공대(恭待)하도록 슬기를 모은다면 괜찮겠다. 한데 하필 언론이 다 쓸데없는 고민이라는 듯이 굴고 있으니….
"손 의원의 남편이 대표로 있는 매장에서 일한 적 있어서 아내가 손 의원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었다."
부동산 투기(投機)를 의심받는 어느 국회의원의 남동생 말을 옮긴 텔레비전 자막이다. 정말 자기 누나를 '손 의원'이라 했을까. 혹시 누나를 누나라 부르지 못할 사연이라도 있는지 몰라도. '손 의원의 남편'이란 표현은 또 어떻고. 하긴 손 의원이라 한 바에야 앞뒤가 맞기는 하는데. 본인이 설령 그랬다손 쳐도 '자형(姉兄)'이나 매형(妹兄)'이라 써야 마땅하지 않은가. 부스러진 가족 관계를 그대로 드러내야 할 이유가 없는 한….
멀쩡히 '누나' '매형'이라 했는데 그리 적었다면 참으로 심각하다. 아버지를 '어머니의 남편'이라 하는 것과 다를 바 없잖은가. 게다가 몇몇 매체가 이런 어처구니없는 표현을 그대로 옮겼으니. 같은 기사에서 고모(姑母)를 '아버지의 누이'라 쓰지 않은 게 외려 신통하다. '조카딸'이란 말이 '여자 조카'에 치여버린 것쯤이야.
서울시교육청이 청(廳)과 산하 학교 교직원끼리는 ‘쌤’으로 부르기를 권장한다는 소식이 있었다. 수직(垂直)적 조직 분위기를 수평적으로 바꾸고자 함이라나. ‘선생님’을 독특하게 발음하는 일부 지역 말이 변형 압축된 듯한 이 속어(俗語)를 굳이 배움터에서 쓰자 하다니. 수평에 집착하는 것도, 수평을 얘기하며 수직적 태도를 보이는 것도 고개를 끄덕이기 어렵다. 집이든 일터든 서로 얼마나 존중하느냐가 중요할진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