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71·사법연수원 2기) 전 대법원장이 사법행정권을 남용한 혐의 등으로 24일 새벽 구속됐다. 2017년 9월 퇴임한 지 489일 만이다. 사법부 71년 역사상 전직 대법원장이 구속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양 전 대법원장의 영장실질심사를 맡은 서울중앙지법 명재권(52·27기)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범죄 사실 중 상당 부분의 혐의가 소명되고, 사안이 중대하며, 현재까지의 수사진행 경과와 피의자의 지위 및 중요 관련자들과의 관계 등에 비춰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서울구치소에서 영장심사 결과를 기다리던 양 전 대법원장은 곧바로 수감(收監)됐다.
양 전 대법원장이 받는 범죄 혐의는 40여 개에 달한다. 일제 강제징용 소송, 전교조 법외(法外) 노조 소송 등 각종 재판에 개입하고 ‘판사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인사 불이익을 준 혐의 등이다. 검찰은 그간 양 전 대법원장을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정점이라고 보고 수사해왔다.
23일 검찰은 이날 5시간 30여분간 진행된 영장실질심사에서 양 전 대법원장의 혐의가 헌법에 위배되는 중대 범죄라는 점을 강조하며 구속의 필요성을 강조했다고 한다. 양 전 대법원장이 검찰 조사에서 객관적 증거를 부인하는 점, 후배 법관들과 엇갈린 진술을 한 점 등을 들어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있다는 주장을 폈다고 한다.
양 전 대법원장 측은 검찰의 수사에 성실히 응했고, 사법부 수장으로서 도주 우려가 없다는 점을 내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이 주장하는 혐의에 대해 "죄가 성립하지 않는다", "실무진이 한 일로 잘 몰랐던 사실"이라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자신의 주장과 배치되는 후배 법관들의 진술에 대해선 ‘거짓 진술’이라거나 ‘모함’이라고 반박했다고 한다.
‘사법농단’ 의혹의 최정점인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를 마치고 서울구치소에서 대기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양 전 대법원장이 증거에 대한 충분한 해명 없이 "기억나지 않는다", "실무진이 알아서 한 일"이라고 발뺌한 전략이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일으킨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법원이 쉽게 납득할 만한 기각 사유 없이 구속영장을 기각하면 법조계는 물론 국민적 차원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비판이 일게 될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 사법부 신뢰 회복을 위해 전직 사법부 수장을 구속하는 고육지책을 택한 것이란 평가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