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심정이 어떠십니까." "재판 개입 혐의는 부인했습니까."

23일 오후 4시 6분쯤 서울중앙지법 321호 법정에서 열린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마치고 나온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게 취재진 질문이 쏟아졌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날 오전부터 5시간 30분 동안 진행된 영장심사에 지친 듯 얼굴엔 피곤한 기색이 묻어났다. 그는 취재진 질문을 뒤로한 채 기다리고 있던 검찰 호송차에 올라타 서울구치소로 향했다.

묵묵부답 -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3일 오전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으로 들어서고 있다. 법원 정문에선 아침부터 양 전 대법원장 구속을 둘러싼 찬반 집회가 열렸지만 양 전 대법원장 차량은 반대쪽 문으로 들어와 이들과 마주치지 않았다. 전직 대법원장이 판사 앞에서 구속 여부를 심사받은 것은 사법 사상 초유의 일이다.

그는 이날 오전 10시 25분쯤 검찰의 회색 스타렉스 호송차를 타고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 도착했다. 법원 정문에선 아침부터 양 전 대법원장 구속을 둘러싼 찬반 집회가 열리고 있었지만 양 전 대법원장 차량은 반대쪽 문으로 들어와 이들과 마주치지 않았다.

양 전 대법원장은 지난 11일 검찰 소환 조사 때와 마찬가지로 회색 넥타이에 검은색 코트 차림이었다. 변호인단과 함께 차에서 내린 그는 "현재 심경이 어떠냐"는 취재진 질문에 답하지 않고 곧장 법정으로 향했다.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들어서던 그는 취재진이 몰려들자 손으로 살짝 밀어내기도 했다.

그는 대법원장에서 퇴임한 지 1년 4개월 만에 피의자 신분으로 법원에 왔다. 전직 대법원장이 영장실질심사를 받는 건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이다. 하지만 전직 사법부 수장에 대한 법원 차원의 예우는 없었다. 그는 일반인이 이용하는 통로 계단을 통해 법정이 있는 3층으로 올라갔다. 법원에서 따로 마중 나온 사람도 없었다.

영장실질심사는 명재권 영장 전담 부장판사 주재로 열렸다. 양 전 대법원장보다 25년 늦게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후배였다. 그는 양 전 대법원장을 '피의자'라고 불렀다. 앞서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을 조사할 때 '대법원장님'이라고 했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수사를 담당한 신봉수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 등 검사들과 마주 보고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이 일제 강제징용 소송 등 여러 재판에 개입했고, 이른바 '판사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인사 불이익을 준 혐의 등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에게 적용한 40여 가지 범죄 사실을 파워포인트(PPT)로 정리해 설명했다.

양 전 대법원장 측은 "재판 개입에 해당하는 행위를 직접 지시한 적이 없다"며 조목조목 반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방이 길어지면서 점심은 법정 옆에 딸린 대기실에서 주문한 도시락으로 해결했다. 그 시각에도 법원 앞 시위는 이어졌다. 법원노조는 '구속영장 발부'라 적힌 인쇄물을 들고 1인 릴레이 시위를 벌였다. 10m 떨어진 곳에선 보수 단체가 "사법부는 좌파 정권 눈치를 그만 보라"며 맞불 집회를 열었다. 양측 충돌을 막기 위해 경찰 500여 명이 투입됐다.

이날 같은 법원 319호 법정에선 허경호 영장전담 부장판사 심리로 박병대 전 대법관에 대한 영장실질심사가 7시간 동안 진행됐다. 앞서 검찰은 재판 개입 혐의 등으로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은 "혐의가 소명되지 않는다"는 취지로 기각한 바 있다. 검찰은 이번에 그가 형사사법정보시스템에 10여 차례 무단으로 접속해 고교 후배인 사업가의 탈세 혐의 재판 진행 상황을 알아본 혐의를 추가해 영장을 재청구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영장 심사가 끝난 뒤 서울구치소로 이동해 자정 무렵 영장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간단한 신체검사를 받은 뒤 구치소에서 제공한 짙은 남색의 긴팔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유치실에서 대기했다. 법원은 예우 차원에서 대기 장소를 검찰청이나 인근 서초경찰서로 지정할 수도 있었지만 일반인과 똑같이 처분했다. 이날 저녁 법원노조는 법원 앞에서 영장전담판사들을 향한 '구속 촉구' 촛불시위를 벌였다. 한 고법 부장판사는 "진실이 무엇이든 법원으로선 참담한 상황"이라며 "양 전 대법원장에게도 생애 가장 긴 하루였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