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속 손혜원 의원의 부친 고(故) 손용우씨는 학생 시절 독립운동 전력(前歷)이 있었지만, 1982~2007년 사이 여섯 차례 독립 유공자 포상에서 탈락했다. '광복 이후 사회주의 경력'이 문제였다. 손씨는 광복 이후 조선공산당 공산청년동맹 서울지부 청년 단원으로 활동했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어 여당 의원이 된 손 의원이 보훈처장을 만난 뒤 관련 규정이 수정됐고 손씨의 독립 유공자 포상도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작년 8·15 행사에서 손 의원 모친에게 직접 훈장을 수여했다. 손씨는 바뀐 규정의 혜택을 받은 첫 독립 유공자였다.
◇정책 결정 두 달 전 처장이 직접 알려줘
보훈처와 손 의원 측의 말을 종합하면 손 의원이 처음 포상 규정 변경 사실을 안 것은 작년 2월 피우진 처장과의 만남을 전후해서였다. 당시 손 의원의 만남 제안에 피 처장이 응했고,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난 둘은 손 의원 부친의 독립 유공자 서훈 문제를 얘기했다. 피 처장은 "300만명의 독립 운동가가 있었는데 현재 서훈자가 1만5000명뿐이라는 것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었고, 보훈처에서 적극적으로 독립 유공자를 발굴하려 하고 있었다"며 "마침 손 의원의 사정을 듣고 '독립 유공자를 적극 확대하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으니 이번에 신청을 해보라'고 말했다"고 했다. 둘 사이에 손 의원 부친 관련 얘기가 오갔지만 어떤 청탁이나 특혜 제공도 없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 만남의 성격이 석연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손 의원이 보훈처가 규정 변경을 추진한다는 것을 미리 알고 피 처장에게 자신의 부친 얘기를 꺼냈다면 피 처장 입장에서는 '압박'으로 느껴졌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또 피 처장이 손 의원 부친의 이야기를 처음 듣고 포상을 신청하라고 했더라도 다른 신청자와 비교할 때 '특혜'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당시 보훈처는 광복 후 사회주의자를 서훈 대상에 포함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내부 용역을 실시한 상태지만 확정은 그해 4월에 했다. 피 처장과 손 의원의 만남 2개월 뒤였다. 이에 대해 보훈처와 손 의원 양측 모두 "어떤 청탁이나 특혜도 없었다"고 했다.
독립 유공자 신청 과정도 논란이 됐다. 손 의원의 오빠가 전화로 신청했기 때문이다.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지만 보훈처 측은 "전화로 신청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국회 안팎에서는 당시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인 손 의원이 정무위 피감기관장인 피 처장을 자신의 의원실로 호출하고 피 처장이 선뜻 응한 것도 의외라는 얘기가 나왔다. 한 정무위 소속 국회의원은 "상임위 소속 기관장 중 야당에는 직접 설명을 하러 잘 안 오는 분"이라며 "한 번도 피 처장과 대면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보훈처, 포상 기준 바꾸고도 발표는 두 달 뒤에
보훈처는 '광복 후 사회주의자'도 독립 유공자로 인정한다는 내용의 내부 방침을 4월에 확정했지만, 공식 발표는 6월에 했다. 정부 관계자는 "당시 처장 결재로 확정된 직후 발표하자는 얘기가 있었지만, 그보다는 6월에 열릴 총리 주재의 국가보훈위원회에서 발표하자고 내부적으로 정리됐다"고 했다. 보훈처 내에서는 "'기준 변경이 가져올 사회적 논란을 의식했다"는 말이 나왔다. 공식 발표를 두 달 늦추면서 손 의원에게는 발표 두 달 전에 미리 관련 사실이 전달된 셈이다.
손 의원의 부친은 이후 독립 유공자로 선정돼 건국훈장 애족장(5급)을 받았다. 손 의원 모친이 직접 서울 용산에서 열린 8·15 행사장에 나와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훈장을 받았다. '일본이 패전할 것이라고 선전하고, 조선·동아일보 폐간의 부당성을 성토했다'는 이유였다. 당시 애족장 수여자는 51명이었다. 보훈처 측은 "본인 다음으로 배우자가 살아 있으면 우선 수여 대상이 된다"며 "손 의원 부친은 배우자가 살아 있었기 때문에 대표로 나온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