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오후 서울 강남역 11번 출구 인근 먹자거리 골목. 1.5m 폭의 거리 양옆으로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 10여 명이 줄지어 서 있었다. 흡연자들은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신경 쓰이는 듯 대부분 벽을 보고 서서 재빠르게 담배를 태운 후 꽁초를 바닥에 집어던지고 사라졌다. 3분 만에 주인 잃은 꽁초 24개비가 하수구 속으로 떨어졌다.

이렇게 무심코 버린 담배꽁초가 환경을 위협하는 미세 플라스틱이 된다. 담배의 필터가 플라스틱의 일종인 '셀룰로스 아세테이트'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21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국내 판매 중인 담배의 90% 이상이 플라스틱 필터를 사용한다.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의 한 치킨집 앞 하수구에 담배꽁초 수백 개가 버려져 있다.

담배꽁초는 크기가 작고 가벼워 어디에 버려져도 빗물·지하수·바람 등에 쉽게 쓸려 바다까지 간다. 가느다란 섬유로 만들어진 담배 필터는 일반 플라스틱 제품보다 더 빨리 분해돼 지름 5㎜ 미만의 '미세 플라스틱'으로 변화하고, 먹이 사슬을 거쳐 결국 인체에 흡수된다. 지난해 해양 환경보호전문가그룹(GESAMP) 발표에 따르면 전 세계 바닷속 플랑크톤과 물고기, 홍합, 굴 등에서 미세 플라스틱이 발견됐다.

국제 환경단체인 해양보존센터(Ocean Conservancy)는 지난해 "32년간 전 세계 해안가에서 쓰레기를 수거한 결과 해양 쓰레기의 3분의 1이 담배 꽁초"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나오는 담배꽁초의 행방에 대해선 누구도 뚜렷한 자료를 가지고 있지 않다. 담배 필터의 주원료가 플라스틱임에도 불구하고 별도의 수거·처리 체계가 없기 때문이다.

2018년 국내 담배의 판매량은 31억8500만 갑(지난해 11월 기준)이다. 1갑당 20개비씩 들어 있고, WHO가 전 세계 담배 판매량의 3분의 2가량이 땅바닥에 버려지는 것으로 추산하는 점을 고려하면 한 해 420억 개비 이상의 담배꽁초가 아무렇게나 버려지는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시의 담배꽁초 무단 투기 단속 건수는 2015년 6만5864건에서 2016년 6만8053건, 2017년 7만2453건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지만, 버려지는 양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서울 한 자치구의 단속 공무원은 "무단 투기하는 사람을 잡으면 '쓰레기통이 없으니 잘 안 보이는 하수구에 넣는 게 미관상 낫지 않으냐'는 사람들도 많다"고 했다.

유럽 의회는 지난해 플라스틱을 함유한 담배 필터를 2025년까지 50%, 2030년까지 80% 감축하는 내용이 포함된 규제안을 통과시키는 등 선진국에서는 담배꽁초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홍수열 자원순환연구소 소장은 "유럽에서는 담배꽁초를 퇴비로 재활용하는 등 다양한 방안을 고심하고 있지만 우리 정부는 실태 파악조차 제대로 못하고 있다"면서 "담배꽁초를 마구 버리면 피해를 결국 우리가 받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대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