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7년 1월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 회관에 전시됐던 이구영 작가의 유화 ‘더러운 잠’. 프랑스 화가 에두아르 마네의 ‘올랭피아’를 패러디한 그림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누드 풍자화 '더러운 잠'을 훼손한 보수 시민 단체 회원들에 대해 그림 값을 물어주라는 판결이 나왔다. 여성 혐오 논란이 있었던 해당 그림에 대해 법원은 "시가 400만원"이라고 판단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15단독 김재향 판사는 화가 이구영씨가 예비역 해군 준장 심모(65)씨 등 2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피고는 원고에게 4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자유민주주의수호시민연대' 회원인 심씨 등은 2017년 1월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1층에 전시 중이던 이씨의 작품 '더러운 잠'을 벽에서 떼어낸 후 바닥에 던지고 그림을 구긴 혐의다. 프랑스 화가 에두아르 마네의 '올랭피아'를 패러디한 작품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이 벌거벗은 채 침대에 누워 있고 최순실씨, 세월호가 묘사돼있다.

화가 이씨는 소송 초기 그림 값을 2000만원으로 평가해 손해배상을 청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좌파 성향인 민족미술인협회의 감정 결과에 따른 것이다. 피고들이 이의를 제기하자 지난 10월 재판부 중재로 한국미술감정원이 그림 값을 재감정했다.

법원은 이 감정 결과를 근거로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해 합성한 사진과 그림을 캔버스 천에 붙인 후 아크릴 물감을 덧칠하는 방식으로 제작한 이 작품의 시가는 400만원 상당"이라고 판단했다. 또 "피고 주장과 달리 이 그림이 예술적 가치가 전혀 없는 단순 음화(淫畵)라고 할 수는 없다"고도 했다

다만 재판부는 "원고가 이번 사건으로 빨갱이, 여성 혐오 작가라는 사회적 비난을 받았다고 하지만 이런 비난은 작품 내용 자체에서 비롯된 것이지 피고들의 행위 때문은 아니다"라며 이씨가 제기한 1000만원 상당 위자료 청구는 기각했다. '더러운 잠'은 국회 전시 당시 여성 혐오 논란에 휩싸였다.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의원실에서 주최한 전시 중 이 작품에 대해 비난 여론이 일었고, 표 의원은 당 윤리심판원에 회부돼 당직 자격 정지 6개월 징계를 받기도 했다.

'더러운 잠'을 부순 심씨 등은 이번 민사소송에 앞서 지난 10일 열린 형사재판에서 벌금 100만원의 약식명령 처분을 받았다. 서울남부지법 형사10단독 김영아 판사는 "그림에 부정적 견해를 갖고 있다고 해도 폭력적 방법으로 견해를 관철하는 것은 법이 허용하는 바가 아니다"라고 했다. 심씨는 본지 통화에서 "형사재판은 선고 결과에 불복해 당일 항소장을 냈고, 민사재판은 항소 여부를 검토 중"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