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 DNA는 유라시아 대륙을 지배했던 초원 제국의 기마민족 전사들과 다르지 않다. 지도는 윤명철 동국대 교수가 밝힌 한민족 이동 통로.

"글로써 벗을 사귄다[以文會友]"는 말이 있다. 건축가 김석철(작고)을 만난 것은 선생의 책을 통해서였다. 그의 '한반도 그랜드 디자인'을 읽다 보면 조선 초 하륜(1347 ~1416)이 떠오른다.

하륜은 건국 초 조선의 실질적 '국풍(國風)'이었다. 태조의 계룡산 천도론을 새로운 풍수이론서 '호순신'을 근거로 좌절시켰고, 죽어서 신덕왕후 강씨 무덤 옆(현재 서울 조선일보 사옥 일대)에 묻히고자 했던 태조의 희망을 무시하고 건원릉(구리시 동구릉)에 안장하게 한 것도 하륜이었다. 그는 충청도 서해안 안흥량에 운하 건설을 시도하였고, 용산에서 숭례문까지 운하를 만들자고 주장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지금껏 논쟁이 되고 있는 경복궁(청와대 포함) 풍수 흉지(凶地)설을 불식시키기 위해 '무악(연세대 일대) 천도론'을 10년 넘게 외친 인물이다.

김석철 선생도 '남북한 대운하(원산~한강하구)' '두만강 하구 다국적 도시' '새만금 어반클러스터' 등을 통한 한반도 개조를 주창하였다. 강대국이 되기 위한 세 가지 조건으로 그는 "에너지와 좋은 물과 창조적 인구"를 꼽았는데, 이 가운데 "백두대간의 맑은 물을 공급하여 창조적 인간이 일할 국토 개조"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강국을 만들기 위한 국토개조론에서 하륜과 김석철은 거의 같은 생각이었다.

또 다른 '以文會友'가 김석동 전 금융위원회 위원장이다. 그를 알게 된 것도 처음에는 글을 통해서였다. 그는 "1960년 이후 2016년 현재, 세계경제가 7.5배 증가한 사이 대한민국 경제는 39.9배 증가하여, 반세기 반에 경제 규모가 11번째인 세계 중심으로 우뚝 서게 된" 원인을 찾아 나선다. 그 기적의 가장 큰 원동력으로 '한민족 DNA'를 꼽는다. "한민족 DNA는 끈질긴 생존 본능, 승부사 기질, 강한 집단 의지, 개척자 정신 등 네 가지로 구성되는데 이러한 DNA는 2500년간 유라시아 대륙을 지배하였던 초원 제국의 기마민족 전사들과 다르지 않다."('한민족 DNA를 찾아서')

우리 민족이 세계 제국을 건설하였던 흉노·돌궐·몽고(원제국)·만주(청제국)와 같은 DNA라는 주장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신채호 선생이 1931년 조선일보 연재 '조선사'에서 "조선족이 분화하여 조선·선비·여진·몽고·퉁구스 등의 종족이 되었다"고 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김 전 위원장은 주장한다. "BC 2333년 건국된 단군조선이 세월이 흐르면서 유라시아 대륙으로 흩어져 세계 최강최대(最强最大)의 제국들을 건설하였다. 고조선 멸망 이후 생겨난 고구려 역시 '몽고의 코리족이 남하하여 만든 국가였다." 그는 최근 10여 년간 50여 차례 유라시아 대륙을 답사하면서 "풍수가 말하는 땅에 대한 직관"과 그 땅 위에 사는 사람들의 언어·민속·문화 속에서 우리가 그들과 같다고 말한다.

정치·경제적으로 우리에게 이해관계가 밀접한 미국·중국이란 세계 제국을 제쳐두고, 굳이 유라시아 대륙에 산재하는 고조선 후예와의 친연성을 강조하는 까닭이 무엇인가? 미국과 중국을 가까이 하면 불안한 2인자는 될 수 있다. 그러나 그보다는 우리가 세계 제국이 되자는 것이다. 고조선의 후예들이 유라시아 대륙과 중국을 정복하여 돌아가면서 한 번씩 세계 제국을 건설하였던 것처럼,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그들에 이어 팍스 코리아나(Pax Koreana)를 세울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이다. "세계 제국을 건설할 잠재력을 갖춘 한민족 DNA를 자각하자"고 그는 우리 시대의 지도자들과 청년들에게 호소한다. 글머리에서 김석철 건축가를 언급하다가 끝머리에서는 김석동 전 위원장을 소개하였다. 무슨 관계인가? 두 분은 DNA가 같은 형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