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진도군에서는 굴을 꿀이라고 부른다. 굴맛이 꿀맛처럼 달기 때문이다. 지난 2일 오후 전남 진도군 임회면 강계마을 해변의 굴 식당가에서 만난 한은지(34)씨는 "이거 잡숴봐" 하며 생굴 하나를 입에 넣어줬다. 울퉁불퉁한 껍데기 속에 박힌 탱글탱글한 굴은 길이가 10㎝쯤 됐다. 입에 넣는 순간 '바다 향기'가 번졌다. 짭조름한가 싶더니 달큼하면서 뒷맛은 고소했다. 한씨는 "요즘이 바다 향이 진할 때라 제철을 맞은 꿀(굴)이 제대로 된 꿀맛을 낸다"고 말했다.

국내 섬 중에서 셋째로 큰 진도의 청정 바다에서 자란 '꿀굴'은 명품 굴로 통한다. 적조가 없는 냉수대에 플랑크톤이 많아 맛이 깊고 영양이 풍부하다. 진도 석화는 바닷물에 계속 잠겨 있어 플랑크톤을 충분히 먹고 자라, 눌렀을 때 탄력이 있어 식감이 매우 좋다. 돌에 붙은 꽃처럼 생겨 석화(石花)라 부르는 굴은 찬 바람이 불어야 맛이 든다. 9월 이후 살이 찌기 시작해 12월에서 이듬해 2월까지 맛이 절정에 다다른다. 보통 설 명절 무렵 굴을 최고로 친다. 이때 부드러운 우유맛이 나 '바다의 우유'라 한다.

철 만난 '꿀굴' - 굴이 제철이다. 생굴에 갖은 양념과 배, 막걸리 식초 등을 넣고 버무린 굴물회는 바다의 향을 품은 생굴과 새콤달콤한 양념이 맛의 향연을 선사한다.

진도군청에서 차로 15분 떨어진 강계마을에서 '진도 명품 꿀굴'을 맛볼 수 있다. 겨울철 3개월 동안 문을 여는 강계마을 굴 식당 8곳은 굴을 까느라 손길이 분주했다. 전국 각지에서 쇄도하는 택배 주문에 주민들은 온종일 두꺼운 장갑을 끼고 조새(굴 까는 도구)로 일일이 굴 껍데기를 벗겨야 한다. 손끝이 얼얼해질 때까지 알알이 모은 굴로 생계를 꾸린 지 30~40년이 됐다고 한다. 주민들은 강계 굴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통영과 여수가 생산량은 많지만, 맛으로만 보면 전국에서 우리 진도 것이 최고"라고 입을 모았다. 진도는 강계마을을 비롯해 의신면 금갑·도명마을 등에서 310어가가 250㏊에서 굴을 연간 560t 생산해 소득을 80억원 올린다.

강계마을에서 30년간 굴을 양식한 한상현(61)씨는 "3월이면 종패(씨조개)를 여수에서 들이는데 자라는 바다 환경 차이로 크고 나면 맛이 전혀 다르다"며 "여수 굴보다 더 탱글탱글하고 향긋해 그 자체가 하나의 완성된 요리"라고 말했다. 진도 굴의 관자는 통영과 여수 것보다 훨씬 크고 쫀득하고, 굴 날개가 유난히 거무스레하고 윤기가 흐른다. 바닥에 쌓인 굴 껍데기를 치우던 한병식(69)씨는 "통영과 부산 사람들이 오히려 진도 굴 맛에 반해 해마다 택배로 주문해 먹는다"며 "거름 격인 맑은 비를 맞고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진도 바다에서 자라서인지 특유의 그윽한 향이 있다. 어느 지역도 못 따라온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강계마을에선 앞바다에서 방금 따온 굴로 만든 굴찜과 굴물회, 생굴, 굴파전, 굴떡국, 굴라면 등을 맛볼 수 있다. 직사각형 찜기에 물을 넣고 통굴을 찐 굴찜 한 접시는 2만원. 성인 4명이 충분히 먹을 만큼 푸짐했다. 목장갑을 끼고 굴칼로 까 먹는 굴은 군더더기 없는 개운한 맛이었다.

전남 진도군 임회면 강계마을 주민 한은지씨가 진도 청정 바다에서 2년간 자란 굴을 들고 있다(왼쪽 사진). 오른쪽은 진도 굴과 전통주인 홍주. 진도에서 많이 나는 붉은빛 약초인 지초로 빚는다.

상인 박덕자(59)씨는 "설을 쇠고 2월 중순 철시하면 이 맛을 볼 수가 없다"고 했다. 별미는 굴물회다. 생굴에다가 쪽파, 고춧가루, 깨, 양파, 참기름, 매실액, 소금, 집에서 담근 막걸리 식초를 넣고 버무리면 된다. 입에 착 달라붙으면서 술술 넘어간다.

굴은 동서양을 불문하고 누구나 즐겨 먹는 해산물이다. 명태와 조기만 해도 한국과 달리 중국과 일본은 선호하지 않는다. 김과 미역은 중국을 빼고 한국과 일본 사람만 즐기는 식이다. 굴은 한·중·일은 물론 유럽과 동남아 등 모든 나라가 좋아하는 '완전 식품'이다. 서양인은 미네랄과 비타민이 풍부한 굴을 정력제로 여긴다. 우리나라는 1450년 단종 2년 공물용으로 양식했다는 기록이 있다. "굴은 무병장수를 돕는 알약"이라는 말이 전해진다.

우리나라는 대부분 양식을 한다. 양식이지만 별도의 인공 먹이를 주는 게 아니다. 굴이 달라붙은 조개껍데기를 줄로 연결해 바다에 드리우면 굴은 물속에 떠다니는 미생물인 플랑크톤이나 여러 유기물을 알아서 먹고 자란다. 굴 한 마리가 한 시간에 바닷물 5L(리터)를 걸러내며 플랑크톤이 비정상적으로 번식해 수질을 오염시키는 부영양화를 막는다고 한다. 보통 10개월 정도 키우면 상품성이 있다.

굴은 요즘 같은 제철에 생으로 먹는 게 최고다. 조선 정조 문인 이옥(李鈺)은 '백운필(白雲筆)' 석화 편에서 굴에 관한 세간의 평을 남겼다. "석화의 쓰임은 회가 최고이고, 무치는 것이 다음이고, 젓갈로 만드는 것이 그다음이고, 죽을 만드는 것이 또 그다음이고, 전을 만드는 것이 그다음이고, 국으로 만드는 것이 제일 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