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극을 찍던 배우가 진짜 조선시대 사람을 만나 연애하고, 만화 속 주인공과 현실의 인물이 만나 사랑을 나눈다. 참으로 기이하고 유별난 얘기들. 모두 송재정(46·사진) 작가의 손끝에서 태어난 TV 드라마들이다. 이번엔 증강현실(AR) 게임에 휘말린 남녀 이야기를 만들어 시청자들을 마법의 세계로 이끌었다.

"전형적인 '히어로물'이죠. 특이한 구성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tvN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종영을 닷새 앞둔 15일, 서울 여의도에서 만난 송 작가는 심드렁한 답을 내놨다. "작품을 내놓으면 나중에 기사를 보고서야 '나한테 혼자만의 독특한 세계관이 있구나'라는 걸 알게 된다"고 했다. 그에게 작품 속 유진우(현빈)는 온갖 고난을 극복해 나가는 그리스신화 속 영웅 '오디세우스'의 현실판일 뿐이다.

증강현실 작품을 쓰겠다고 결심한 건 2017년 출시돼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끈 '포켓몬 GO' 때문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온갖 게임을 섭렵해왔다는 그는 "'포켓몬 GO'를 접하자마자 '이거다!' 싶었다"고 했다. 보통 게임이라면 드라마에 녹여내기 어렵겠지만, 증강현실은 현실을 배경으로도 충분히 구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나인' 'W'에 이어 준비하고 있던 타임슬립(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펼쳐지는 이야기) 드라마는 과감히 포기했다.

드라마에서 현실과 증강현실을 오가며 활약하는 유진우는 미국 자동차회사 '테슬라'의 CEO '일론 머스크'에게 착안해 만들었다. 평소 인물 평전을 즐겨 보는 송 작가는 일론 머스크의 자서전을 읽고 감명받아 '돈 많고 첨단 기술과 가까운' 남자의 모습을 배우 현빈에 투영시켰다. 결과는 대성공. 남자 주인공에게 비중이 너무 크다는 지적도 있지만, 송 작가는 "액션도 잘하고 멜로도 잘하면서 돈 많은 재벌 이미지도 보여줄 수 있는 배우는 현빈밖에 없는 것 같다"며 큰 만족감을 드러냈다.

원래 송 작가는 '시트콤 명장'으로 이름을 알렸다. SBS '순풍산부인과', MBC '거침없이 하이킥' 등 인기 시트콤을 여럿 남겼다. 스스로도 자신을 '혼종' 작가라고 했다. 드라마 작법을 공부하거나 연습해본 적은 없다. 처음 드라마를 시작했을 땐 '유별난 대본'으로 구박을 받았다. 한 방송사에서 '판타지 구조의 기본이 안 돼 있다'는 지적도 받았다. 그때마다 송 작가는 '정해진 구조가 어딨어? 만들면 되지'라며 반발심을 가졌다. 드라마나 소설보다는 인문학 책을 즐겨 읽는다. 아이디어는 '포켓몬 GO'를 처음 접했을 때처럼 일상에서 얻는다. 그의 작품이 전형적이지 않은 이유다.

"한번 시작하면 질릴 때까지 하는 편이에요." 물론 겁도 난다고 했다. 매번 이색 소재로 접근하는 것이 거부감을 유발할까 두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작품을 계기로 "우리 제작진이 증강현실을 이렇게 훌륭하게 구현할 수 있는데, 한번 시도하고 버리기엔 아까운 소재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호기심을 좇다보니 여기까지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